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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불안은 영혼을, 사랑은 불안을 잠식한다

아녜스 바르다와 제이알의 협업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감상한 후, 바르다의 작품들을 찾아보기로 다짐했다. 영화 공부할 때 알게 됐던, 약 10여 년 전에 흥미롭게 봤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부터 감상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은, 바르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이다. 작품은, 여성 감독의 손길로 빚어진 만큼 섬세한 내면 세계를 드러낸다.


영화는 여주인공 클레오가 타로점을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당일 저녁, 클레오는 의사로부터 건강 검진 결과를 듣게되는 날이고, 그녀는 자신이 큰 병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점괘에서 큰 병(암)에 걸릴 운명이라고 나온 것. 그때부터 클레오는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오후 5시부터 7시. 즉, 클레오가 진단 결과를 듣기 전까지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철저히 클레오의 행보와 내면을 팔로우한다. 점괘를 본 후, 모자를 사러 간 클레오에게 가정부는 이렇게 충고한다. "화요일에 새 옷을 입는 건 불길해요." 게다가 클레오가 고른 모자는 검은색이다. 쇼핑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불길한 요소들은 클레오를 뒤따르고, 가정부는 꺼리침학 번호판의 택시 탑승을 거부하는 등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클레오는,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 어떤 상황보다도 클레오의 내면이 더욱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사히도 집에 도착한 그들이지만, 클레오는 여전히 불안하다. 불안을 안고 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병을 숨기기에 여념 없다. 집 안에서의 시퀀스는, 클레오의 심적 부담을 가중하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남자는 그에게 진중하지 않은 것 같고, 음악 파트너들은 그녀를 무시해대기 일쑤다. 불안과 짜증이 뒤섞인 클레오는 홀로 외출하기를 결심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외출복이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치장한 그녀는, 스스로를 불안과 고통 속에 가둔 듯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군중 속을 오가며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식하려고 애쓴다. 거기에는 조력자, 예술가 친구가 있다. 사실, 온 신경이 진단 결과에 집중되고 있을 클레오이지만, 그나마, 군중들의 일상을 보고, 친구와의 짧았던 만남 덕분에 조금은 기운이 누그러진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안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심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세상은 그녀의 속내를 모른 채 흘러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만난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와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클레오. 남자와 함께 의사를 찾아나서면서 둘은 더 가까워진다. 불안을 잠식시킨 이 남자 덕분에, 클레오는 여느 때보다 행복해보인다.



이 영화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는 일상과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시한부로 인식한 불안에 휩싸인 클레오를 대조시킴으로써 우리네 삶을 압축한다. 다양한 형태의 미와 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미모를 갖춘 클레오이지만, 사실 그녀의 내면은 어둡기 그지없다. 특히, 클레오와 친구가 감상한 단편극은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데, 그 영화는 희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글라스를 쓰고 벗은 이의 시선이 보여주는 확연히 다른 세상은, 클레오와 우리 모두를 향한 조언이다.

결국, 클레오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거기에는 진솔한 사랑이 있다. 병과 죽음이 닥치더라도, 사랑하는 이와의 공존은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클레오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쯤, 길에서 만난 남자는 그녀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지만, 불안을 잠식하는 것은 사랑이다.

아주 다행하게도, 영화는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모든 심적 강박과 무게가 해소되는 엔딩 신은, 클레오의 내면까지 성장하게 만들었으리라. 세상은 이렇듯 희비극이 공존하고 있다. 두 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던 클레오를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클레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들, 많을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왠지 고통스럽다. 딱히 어디가 두드러지게 아프지 않음에도, 왠지 나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안과 우려.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인식되어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 따위는 안 하는 게 맞다는 것. 알면서도 떨쳐내기 힘들다. 불안은 영혼을 해치는데, 그는 왜 자꾸 나를 찾아오는가. 하지만, 불안과 걱정이라는 게 있기에 우리는 발전을 위해 힘쓰고, 다행인 결과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아는 게 아닐까. 불안의 순, 역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다.

* 바르다는 자신의 영화 작업에서 '우연'을 가장 큰 조력자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속 클레오가 접한 우연들 역시, 큰 역할을 해낸다. 세상은 이렇듯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 또한, 바르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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