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한 파리의 낭만
우디 앨런의 영화들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드나잇 인 파리>.
이 영화에는 다양한 소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행과 예술,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작품이기에 낭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간은 '파리'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대단한 이유는, 남녀 모두를 유혹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대개, 낭만적인 영화들은 여성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한데, 이 영화는 다르다. 필자의 지인들 중에는, 극장에서만 세네 차례 봤고 집에서도 즐겨 꺼내보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몇 명 있다. 필자 역시, 이 영화를 '사랑'한다. 감독의 팬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이 '인기를 잘 아는' 영화 관계자들은, <미드나잇 인 파리>를 지속적으로 재개봉한다. 질릴 법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팬들은 극장을 찾아 파리의 낭만에 다시금 젖어든다. 자, 그럼 영화 속 낭만들을 살펴보자.
영화 속 주인공 '길'은 향수에 취한 인물이다. 그가 쓰고 있는 소설 속 배경 역시 '향수 가게'다. 여기에서 말하는 향수는 香水가 아닌, 鄕愁이다. 옛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추억을 소중히하는 '길'의 가치관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어쩌면 '향수'에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즐긴다는 의미의 享受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어쨌건 길은, 옛것을 그리워하는 낭만주의자다. 동시에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의 약혼녀 '이네즈'는 그를 과대망상증에 빠진 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길과 달리 이네즈는, 현실주의자다. 뉴요커의 표본이다. 길을 업신여기는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네즈는, 길 앞에서 대놓고 친구의 지성과 매너를 찬양한다.
비 내리는 길거리 걷기를 좋아하는 길은, 여느 남자들과는 다른 '낭만파'다. 그런 그의 망상은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자정의 종이 울리면, 그를 데리러 오는 택시가 있다. 그 택시를 타면, 길은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이 무슨 뜬구름 잡는 망상인가!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망상이지만, 그의 낭만 서린 꿈은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에게도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
2010년에 사는 길은, 그가 생각하는 황금시대인 1920년대로 향한다. 길은, 과거로의 예술여행에서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연인 젤다,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만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광경에 빠진 길은, 그때부터 시간여행에 더 깊숙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는, 여행에서 만난 피카소의 정부, 마드린 브리수에 첫눈에 반한다. 길이 사랑에 빠진 마드린 역시 '길과 같은 취향과 낭만을 가진' 여자다. 그녀 역시, 예술을 사랑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다. 이렇게 취향이 맞는 둘은,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마드린에게는 또 다른 낭만이 있다. 그녀의 관념 속 '황금 시대'는 1890년대다. 길과 마드린은 마차에 오른다. 길이 시간여행을 위해 택시를 탔듯, 마드린의 시간여행을 위해서는 마차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게 둘은 1890년대로 향한다. 바이올린 연주가 어우러진 파티장의 축하공연은 캉캉이다. 그리고 둘은, 파티장에서 화가 로트렉과 고갱, 드가를 만난다. 마드린에겐 더없이 완벽한 시공간이다. 자신의 황금시대에 도착한 마드린은, 길에게 '쿨한 이별'을 통보한다. 이렇게, 길과 마드린의 허무맹랑한 사랑은 끝이 난다. 이 신호는, 길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표상이다.
길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21세기의 남자로 돌아온 그는, '진짜 사랑'을 찾는다. 관념과 취향이 다른 이네즈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레코드 가게 점원과의 좋은 인연을 맺으려 한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함께 걸어나가는 둘의 뒷모습은, 완전한 낭만은 아니지만 '의외의 달달함'을 선사한다.
이렇듯,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에서 일어난 온갖 낭만을 안은 작품이다. 파리를 동경하고, 그 속에서의 예술을 사랑하는 그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꿈. 물론,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밀려오는 허망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꿈 덕분에 얻은 바가 상당하다. 길의 일장춘몽은 사라졌지만, 그 감흥은 평생 유지될 거라 믿는다. 우리가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필자를 포함한 감상자들이 한 번쯤은 이같은 '꿈'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존경하는 이를 꿈에서 만났을 때의 황홀함. 그리고 그 꿈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길의 꿈을 통해, 나의 꿈을 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담아내는 우디 앨런. 특히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파리의 다양한 풍경들을 그에 걸맞은 재즈 음악과 함께 오래간 비춰준다. 관객들을 완전히 파리의 낭만에 빠트려버리겠다는 의도가 잔뜩 배어있다. 이 낭만에 빠지고 싶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