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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블비> 리뷰

인간과 로봇의 따스한 교감

일반적으로 로봇은 기술 중심적인 기계이자 인간의 대체제로 여겨지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인간과 대등한 로봇이 등장하고 있지만, 온전한 소통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나아갈 길이 멀다해도 나는 로봇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여  그들과 소통할 날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영화 <범블비(2018)> 속 '범블비'와 '찰리'처럼.

<범블비(2018)>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스핀오프이다. 시리즈의 시작점에서 시작되지만 스토리텔링보다는 범블비에 집중한 캐릭터 영화다. 범블비는 옵티머스 프라임으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지구로 온 로봇으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캐릭터다.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있고 수줍음이 많으며 귀여운 행동을 곧잘 한다.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한 외롭고 불안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같은 캐릭터 설정 때문에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변신했던 쉐보레 카마로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동그랗고 귀여운 폭스바겐 구형 비틀로 변신한다. 긁히고 낡은 첫인상은 측은지심을 자극할 정도이다. 몸체도 인간에 비하면 훨씬 크지만 다른 트랜스포머에 비하면 작다.

범블비를 발견한 찰리 역시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소녀다. 아빠를 잃은 슬픔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소원함을 느끼며 살아가던 찰리는 폐차장에서 범블비를 발견한다. 자동차 마니아인 찰리는 범블비를 인수해 직접 수리하다 우연히 변신 과정을 보게 된다. 외계종족 로봇임을 직감한 찰리는 범블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범블비는  힘든 과거의 기억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지구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로부터 받은 공격, 음성 기능 장애와 코어 기억 장치 손상으로 셧다운 됐다 다시 깨어난 후에 주눅 든 모습은 사람들이 겪는 공포의 순간과 소외의 감정을 반영한다. 흔히 봐왔던 히어로물 속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영웅적인 면보다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된다. 해변에서 엄폐를 연습하며 범블비의 지구 정착 훈련을 하는 모습은 범블비의 귀여움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장면이다.

같은 처지에 놓인 범블비와 찰리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이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 상처, 결핍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은 각자의 강점과 마음을 모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고유의 기질대로 살지 못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포용하면서 교감하는 모습은 웬만한 버디 영화보다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범블비가 찰리와 소통하기 위해 적절한 노랫말이 담긴 음악을 틀고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낮은 자세를 취하는 장면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서로를 믿지 못할 때 범블비가 자신의 볼을 찰리의 손에 갖다 대고, 찰리가 범블비의 볼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인간과 로봇의 정서적 교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편 범블비는 찰리와의 우정을 넘어 아빠의 결핍을 채우는 역할까지 한다. 주말마다 아빠와 차를 수리하며 추억을 쌓았던 찰리는, 이제 범블비와 따뜻한 추억을 쌓아간다. 또한 학창시절 다이빙을 잘 했지만 지금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범블비가 찰리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준다. 덕분에 시도조차 두려워하던 찰리가 도전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이렇듯 <범블비>는 인간과 로봇 간의 진한 교감을 그린 작품이다. 여느 SF물에서 봐왔던 로봇과는 달리 앙증맞고 순수한 매력을 지닌 범블비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로봇상에 가깝다. 찰리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음악으로 교류하고, 스킨십으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저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쓰여있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이라는 글귀처럼 실제로 인간과 로봇이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사람 간의 관계처럼 친숙할 순 없겠지만 언젠가는 친구나 가족처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어쩌면 <범블비>는 이 기대를 스케치한 영화가 아닐까. 앞으로 인간과 로봇은 불가분의 관계가 될 수 없고, 때문에 우리는 로봇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실제로 로봇 시장은 활성화되었고 일상 곳곳에 침투되어 있다. 앞으로 로봇과 협업하고 교류할 날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로봇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원초적인 감성을 끌어낸 데 있다. 록 밴드 본조비의 명곡 등 추억의 8090년대 명곡들이 복고 감성을, 따듯한 스토리가 선한 본성을 자극한다. 푸른 눈을 지닌 로봇과 결핍 가득했던 소녀의 연대가 빚어낸 기적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롭다. 화려한 로봇 영화가 아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감성 로봇 영화가 보고 싶다면 <범블비>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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