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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 시사회+쇼케이스 후기

우당탕탕! 만만치 않은 영화 제작기

9월 14일, 추석 연휴 개봉하는 영화 <거미집>의 시사회와 쇼케이스 현장에 참석했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송강호) 감독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거미집>은 감독부터 배우, 제작자와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현장 안팎의 모습을 타이트하게 비춘다. 예술가의 욕망과 고뇌를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군상의 면면을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의 대사와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담은 점이 인상적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인물 김열은 세간의 혹평을 견디면서 <거미집> 작업에 몰입한다. 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지만 김열은 결말을 바꾸려고 한다. 단 이틀만 고생하면 걸작이 나올 거라 확신하지만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바뀐 시나리오를 읽고 걸작을 예감한 신성필림 창립자이자 김열의 스승인 신회장의 딸 신미도(전여빈)의 적극적인 지지로 재촬영에 들어간다. 문제는 스태프뿐 아니라 시대도 문제라는 점! 검열의 시대, 한 편의 영화가 나오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열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완성하고 꿈을 이루고자 광기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안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 배우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거미집>은 김열을 통해 구태의연한 내용(현실)을 뒤집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인물상을 제시한다. 특히 김 감독의 예술현에 대한 욕망이 당대 최고의 거장이자 스승이었던 신 감독과 비교되는 상황이 흥미롭다. 스승과 달리 '싸구려 치정극이나 만드는 감독'이라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는 김 감독은 열등감을 자극제로 활용한다.


쇼케이스에서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란 걸 김 감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70년대는 영화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를 어떻게 돌파해나갔는지,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초석이 어떻게 다졌는지, 팬데믹 이후 위축된 영화계를 선배님들이 그러했듯 돌파해 나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송강호는 <거미집>을 통해 왜 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배우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카메라 앞에서만 활약해온 그는 감독으로서 겪는 고충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배우로서 27년간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다가 카메라 뒤에서 배우들을 지켜보는 연기를 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는 외롭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니 힘들었다. 카메라 뒤 감독들은 구경만 하면 되고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고민과 부담감이 있더라. 선장으로서의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영화를 통해 감독의 감정을 느꼈음을 밝혔다. 작중 그는 살인과 치정, 복수가 난무하고 모든 것이 불타 파멸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열정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그의 욕망은 끝까지 식지 않는다.


<거미집>은 은근히 유머러스한 영화다. 시대상과 예술혼 등 다소 무겁고 진지한 소재를 다루지만 과장된 연기와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로 폭소를 유발케한다. 개인적으론 강호세 역으로 분한 오정세와 신미도를 연기한 전여빈 덕분에 '빵' 터진 순간들이 더러 있다. 호세의 깐족거림과 미도의 열의 가득한 행동이 배꼽 잡게 만들었다. 한유림(크리스탈)을 향한 서로 다른 시선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만에 김지운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임수정의 연기도 잊히지 않는다. 베테랑 여주인공 이민자로 변신한 임수정은 가련하고 전형적인 여성과 진취적인 신여성 두 가지 역 모두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특히 영화 속 영화, 흑백 스크린에서의 그는 정말정말 아름다웠다.



<거미집>은 하나의 작품 속에서 두 개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득템 같은' 영화다. 특히 70년대 특유의 작품색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시의 대사톤으로 "난 거미가 싫어" "너무 무섭고 답답해" 등의 대사를 읊는 배우들의 열연은 낯섦과 유머를 오가며 묘한 흥미를 자극한다.


캐릭터 연기와 앙상블이 시계 태엽처럼 착착 맞아 떨어져 완벽함을 자아낸 <거미집>. 배우들의 케미스트리와 함께 김지운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연출력이 합이 걸작을 탄생시켰다. 얽히고설킨 스토리 속에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러닝타임 132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마법을 경험할 것이다.


<거미집>은 영화(예술)란 무엇인지, 창작과 독창성을 향한 욕망은 어떤 것인지를 색다르게 보여주는 영화다.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촬영장에서 일장춘몽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데다다 재미까지 갖춘 작품.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박수갈채를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추석 연휴 볼 만한 개봉작을 찾고 있다면 훌륭한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작(흥행 조짐 보임)! 9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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