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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영화로 추천! <리빙: 어떤 인생> 리뷰

연말 영화로 제격인 <리빙: 어떤 인생>이 12월 13일 개봉한다.



<리빙: 어떤 인생>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의 리메이크작으로, 벨문학상과 부커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본을 쓴 작품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 <캐롤>을 비롯해 <체실 비치에서>, <유스> 등의 제작자 스티븐 울리가 다시 한 번 제작에 나서 감명 깊은 메시지와 미장센을 선보였다. 연출은 <뷰티>로 칸 영화제 퀴어종려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허머너스 감독이 맡았다.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리빙: 어떤 인생>의 '윌리엄스'(빌 나이)도 마찬가지였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기계적이고 따분한 삶을 살던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완전히 달라진다. 죽음에 직면한 후에야 비로소 달라지게 된 것.



윌리엄스는 'Mr. 좀비'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무미건조한 날을 걸어왔다. 런던시청 공무원인 그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골치 아픈 민원이 들어오면 최대한 다른 부서로 떠넘기는 전형적인 관료였다. 그런 그가 변하게 된 계기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소식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 덕분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윌리엄스는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 변화를 꿈꾸지만 몇 십년이나 밴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도 즐기지 못하는 아이러니. 한평생 일만 해왔던 사람이라면 윌리엄스의 상황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떠난 해변에서 만난 극작가 '셔덜랜드'(톰 버크), 특유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지닌 시청 직원 '마거릿'(에이미 루 우드) 덕분에 생애 처음 자유로운 일탈과 즐거움을 경험한다.


또 하나 안타깝고도 흥미로운 점은 윌리엄스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직원들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상황을 전한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셔덜랜드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준 마거릿 뿐. 사실을 알아야 마땅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전하지도 못하고 인생의 막을 내린 윌리엄스의 삶이 안타깝고 슬펐다.


그러나! 뒤늦게 인생을 깨달은 그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떠났다. 중절모를 쓰고 매일 아침 런던행 출근열차를 타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꿈은 이뤘으나, 유의미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생애 끝에 깨달은 것이다. 한쪽 구석으로 밀어뒀던 '놀이터를 만들어달라'는 민원 서류를 꺼내들고 놀이터 조성에 발벗고 나선다.



대개 시한부 소재의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흡사하다. '소중한 시간을 원하는 방식대로 즐기라'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훌륭한 삶의 정점은 보편적인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리빙: 어떤 인생>은 주제를 관객들에게 더 가닿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빌 나이의 이미지와 연기 덕분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성공으로 하나의 격언처럼 사랑받고 있는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결혼은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는 명대사를 뱉은 빌 나이가 연기한 윌리엄스는 다시 한 번 파급력 있는 메시지로 '인생 멘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식한 연출 역시 주제의 힘을 보탠다. 195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4:3 화면 비율로 당시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겼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동화 같은 장면을 그린 점도 인상적이다. 특히 눈발이 내리는 놀이터에서의 윌리엄스의 모습은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윌리엄스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이런저런 회고의 말들을 통해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보여주는 방식도 감동을 배가시킨다.


<리빙: 어떤 인생>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오늘을 즐기라(Seize the Day'와 같은 메시지와 더불어 유한한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더불어 겉으로 좋아보이는 중산층의 일과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한다.


연말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지금. 영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리빙: 어떤 인생>이 제격이다. 가족과 함께 볼 만한 훈훈한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러닝타임 102분.




※본 글은 영화사로부터 시사회 초대를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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