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여성상 그린 초현실주의 풍자극
발칙한 세계관,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에 메시지까지! <가여운 것들>은 완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초현실주의 풍자극이다.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통해 현실의 민낯을 들추고 꼬집어낸다.
천재이자 괴짜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렘 대포)는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투신자살한 벨라는 가까스로 목숨은 건지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다. 갓윈은 벨라가 배었던 아기의 뇌를 그녀에게 이식해 새 생명을 부여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뇌와 신체 나이가 따로 노는 벨라는 철부지 어린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벨라(의 뇌)가 성장하면서 호기심이 발동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커져간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벨라에게 반한 불손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은 벨라에게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통제 불가능한 벨라에게 바깥 세상은 일절 보여주지 않은 갓윈. 이를 구속으로 느낀 벨라는 갓윈에게 떠나겠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벨라는 리스본으로 향한다.
리스본에서 벨라가 경험한 것은 뜨거운 뜀박질과 단맛 가득한 음식과 폭력이다. 처음으로 보고 겪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 가면을 쓰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들에 벨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묘한 자극과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혼돈을 겪는 과정에서 벨라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재미있는 건 그 동안 수많은 여자들을 울렸던(?) 덩컨이 벨라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 때문에 멘탈이 붕괴되는 장면들. 필터링을 모르는 벨라는 매사에 호기심과 의구심을 품으며 질문하고 행동하지만 덩컨은 이 점에 환장한다. 그러나 점점 이 '남다른 매력'에 반해 벨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자유를 약속했던 덩컨은 감당할 수 없는 벨라를 다루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유람선을 탄다. 그러나 선상에서도 벨라의 호기심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을 만들고 그들로 인해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철학의 의미를 새기게 되는 벨라. 리스본에서 성에 대한 욕망을 경험했다면 선상에서는 학습과 사회계층(빈부격차)에 대한 현실을 자각한다. 특히 가난과 더위로 목숨을 잃어가는 빈민을 위해 덩컨이 도박으로 딴 돈 모두를 기부(사기당)해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재산을 잃은 벨라와 덩컨은 무일푼으로 파리에 버려진다. 어떻게든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하던 중에 벨라는 스스로 매음굴에 들어간다. 그러나 벨라는 매음굴에서조차 남성들의 저열한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남성을 선택하려는 주체성을 발휘한다. 타인은 창녀라 부르지만 벨라는 본인의 선택으로 이 상황을 주도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벨라의 행동에 손가락질을 하고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역시 사회적 통념이자 구속, 압박이다. 이를 거부하는 벨라에게 사회적 잣대와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다. 벨라가 원하는 건 수동적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이 아닌 자유의지로 개척한 삶이다. 남성중심 문화에 의해 형성된 사회가 아닌 여성이 정의하는 삶을 바란다. 이는 벨라가 입고 등장하는 의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코르셋으로 옥죈 의상이 아닌 짧은 반바지, 치마를 입고 등장하는데 어찌나 멋있고 예쁘던지!
엔딩은 벨라의 선택에 의해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본능과 이성, 욕망과 과학적인 논리를 오가는 벨라의 좌충우돌 여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가여운 것들>.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말처럼 벨라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만의 삶을 이룩했다. 뇌와 신체의 동기화를 스스로 만들어낸 벨라의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아름답고 새로운 비주얼, 엠마 스톤의 미친 연기력, 은유와 풍자로 전하는 메시지까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다. 개인적으론 정말 좋게, 재미있게 관람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기엔 솔직히 조심스럽다. 물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팬이라면 대만족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