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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리뷰

더 이상의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는다면?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이런 표현도 조심스럽다. 단지 '그럴 것 같다'는 추측에만 그칠 뿐이니까. 유가족의 마음은 어떤 글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세월호, 대구지하철, 씨랜드 수련원 참사 유가족의 일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앞선 세 사건은 참사, 그야말로 비참하고 끔찍한 사고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매일을 힘겹게 버텨내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은 반성과 깨달음을 전한다. 개봉 시기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때라, 더 큰 울림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유경근 씨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2013년 딸 예은이가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온 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그는 햇살처럼 웃고있는 예은이의 액자사진을 옆에 두고 인터뷰를 진행한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슬픔인가). 피자 등의 음식을 사주자 배가 고팠는지 단숨에 남김없이 먹었다는 일화. 사진으로 기록해 둔 다섯 소녀들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지금은 이 세상이 없다. 다음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유 씨는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지냈다. 딸을 잃은 그는 매일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고백한다. 장례를 치른 후 예은이를 따라 갈까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내 억울함에 정신을 차렸다고 밝힌다. 유 씨의 사연과 함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황명애 씨와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로 쌍둥이 딸 둘을 잃은 고석 씨의 이야기도 합류한다.



영화는 이들 세 유가족의 사연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질문한다. 더불어 국민 대다수가 참사를 잊어가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유가족의 현실을 통해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참사의 피해자는 희생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가족은 물론 참사 현장에 있었거나 목격한 사람들까지 트라우마를 겪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다. 유 씨가 진행했던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에 출연한 황 씨는 잦은 기침을 해댄다. 참사 당시 딸의 유해를 찾고자 매일 밤 화재 현장을 헤매느라 호흡기가 상하고 말았다. 심신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황 씨는 딸의 억울함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


유가족들은 참사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을 위해 집회를 열지만 반대집회를 여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현장은 이해관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참사는 계속되지만 이를 대하는 입장차이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집단과 그 외의 집단. 하지만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다. 하지만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유가족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발언을 함부로 내뱉는다. 또한 근거 없는 소문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독한다. 더불어 참사 초기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금세 바뀌고, 어느새 가해자로 변해있기도 한다. 유 씨의 말처럼 유명해지고 싶어서, 혹은 더 큰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은 또 한 번 폭력을 당한다. 작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다. 희생자들이 술 먹고 마약을 하다 죽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유가족들의 고통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닌, 더 이상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영화다. 유가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것의 본질에는 앞으로 닥칠 비극을 예방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사건을 해결하고 같은 상황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세월호, 대구지하철, 씨랜드 수련원, 이태원 참사는 그러했는가. 영화는 이 점에 경종을 올린다.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뒤통수를 때린 장면이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난다. 유 씨의 팟캐스트에 출연한 고 씨와의 대화 장면이다. 서로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은 데 미안함을 느낀 둘은 이렇게 말한다. 유 씨는 "씨랜드 참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내 일처럼 여기지 않고 관심 갖지 못한 게 또 미안하고. (...) 그때 만일 내가 달려가 '같이 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이라며 아쉬움을 전한다.


더불어 황 씨의 말 역시 참사는 희생자와 유가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공동의 문제라는 점을 역설한다. "내 아이가 안전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가 안전해야 해요. 옆집에 있는 아이가, 우리 동네에 있는 아이가 안전해야 내 아이가 안전한 거예요."


세 명의 유가족 외에도 <세월: 라이프 고즈 온>에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故 배은심 여사도 등장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유가족들의 연대에 힘을 쏟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들을 잃은 후의 삶에 대해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다'라고 말하지만, 아니에요. 그냥 안고 사는 거예요"라 말한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세월호 참사를 꾸준히 기록해 온 장민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은 지난 3월 12일 있었던 기자간담회를 통해 영화를 기획한 의도로 "유족들이 참사 이후 삶을 살아가는 방식, 혼자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어떤 답이 필요한지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도 안전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유가족들의 모습과 참사의 재발을 막고자 탄생한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3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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