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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박물관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 내가 처음 접했던 그의 책이다. 이후, 그의 사상은 물론 문체에까지도 매료된 나는 저작들을 하나둘씩 접해나가고 있다.


책<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러셀의 책들 중 주제에 맞게 편집자가 인용문을 옮겨놓았다. 철학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발휘했던 러셀이었기에, 이 책에서도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별 목차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러셀은 많은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인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책 제목들 중 하나를 <환영받지 못하는 에세이>로 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자신의 명확한 주관을 선포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제목에서부터 종교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전투력을 내비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러셀의 다양한 책들에서 발췌된 글들로 엮여있기에 그의 총체적인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단점도 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책 전체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주제에 대한 완전한 세계관을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러셀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한 사람의 겉모습과 같은 책이다.


러셀의 글들만 봐도 그의 재치와 위트를 엿볼 수 있다. 그의 글들은 신랄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 신랄하고 맹렬하게 사회를 풍자한 데 반해, 생애 가장 중요시 여겼던 부분이 '사랑'이라는 걸 안다면 꽤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질 것이다.


책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볼 수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러셀의 정의로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꿈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에 도움이 되며, 통찰의 순간들을 통해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시대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이 마음껏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가 창조되는 모습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고, 제아무리 참혹한 세상도 나를 흔들어대지 못한다.'

러셀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러셀은 재치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고,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대다수의 인류를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는 가혹하고 독단적인 도덕이다. 근엄함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재치이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공감했다.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진지한 것들이 승리할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환대받지 못한다. 나 또한 재치와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면, 재치는 소통의 수단으로써 절대 배제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한 권의 잠언집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책이 한 인물의 사상을 엮은 방식이라, 내용들을 짚어내기보다는 러셀이라는 인물 탐구에 초점을 둔 서평이 되어버렸다. 책은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뤄내지만, 그 속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은 인간의 욕구들이다. 허영심, 성취감, 경쟁심 등이 러셀의 신랄한 풍자를 이끌어낸 소재들이라면, 사랑과 인도주의는 그의 찬사를 받는 소재들이다.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는 말에서 러셀의 신념이 확고히 드러난다.


'철학'을 따분하고 어렵게만 여겨왔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러셀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선입관도 바꾸는 데도 기여한다. 단, 기독교 신앙이 짙은 독자들에겐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않았던 이성적인 러셀이기에, 신(神)에 대해서도 다소 가혹한 언어들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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