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낙인


essay


포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계획 없이 탄 버스. 최대한 멀고 낯선 곳으로 향하고 싶어, 생소한 장소가 적힌 버스를 골라 탔다.

버스를 탈 때부터 할머니들의 장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는 역한 짠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코를 찌른 데 이어, 그 냄새를 쏘아붙이는 버스 기사의 눈초리가 나를 더 괴롭혔다.

운전에 방해가 될 까봐, 짧은 걱정을 했다.

온 창문을 열어젖혔더니, 악취는 영역을 줄여나갔다.

다행히, 걸림돌이 줄어들었고 나는 온전히 바퀴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버스는 나의 속내를 읽었는지,

굽고 거친 길 위를 시끄럽게 밞아나갔다.

터덜터덜 요란한 소리를 내는가하면, 돌을 짓이기는 바퀴의 촉감이 발 끝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그걸 즐겼다.

함께 탄 할머니들은 주기적으로 이 길을, 버스의 질주와 촉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일테다.

순간, 짠비린내를 담았던 장바구니 속에는 그들이 견뎌낸 인생의 고행들의 켜켜이 쌓여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 할머니가 버스에 탔다.

그녀는 먼저 탄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들 안면이 있는건지, 서로의 안부묻기에 바빴다. 정겨워보였다.

버스가 마치 노인정 같았다. 만남의장소 같은 곳이었다.

인사를 나눈 후, 그 할머니는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 앉았다.

단발에, 새까맣게 염색한 그녀는 뒷머리 중간이 텅 비어있었다. 흡사 분화구 같았다.

나는 그 공백에 한 번 놀랐고, 공백을 메운 색에 한 번 더 놀랐다.

동물원에서 봤던 원숭이 엉덩이 색과 닮아있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할 때 그 색. 분홍빛보단 짙고 선홍빛보단 엷은 색. 그 색을 보는 순간 잠시간 부끄러웠고(원숭이 엉덩이의 누드를 떠올려서일까), 이내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공백은 나의 부끄러움이나 조소로 채워질 만한 게 아니었다. 그 붉음은 한여름 뙤약볕을 견뎌낸 건강한 공간이다. 삶이 응집된 공간이다.


기름기 배어있는, 때 빼고 광 낸 듯한 민머리 아저씨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누군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고행이라는 도장을 지그시 누른 듯한 흔적. 여백인 동시에 삶의 도장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우리 엄마의 삶을 생각했다. 다행히도(?) 나의 엄마의 머리에는 분화구가 없고, 따라서 붉은 도장도 찍혀있지 않다. 언젠가는 도장이 찍힐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버스의 할머니는 도장을 찍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암묵적으로 표했다. 나의 엄마는 무엇으로 그걸 표하고 있을까. 또한 나는 무엇으로 나의 지나온 삶을 표출 중인가. 나는 이날, 버스 안에서 삶을 성찰했다.



- 201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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