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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

일본의 '비포 선라이즈'

일본의 <비포 선라이즈>. 필자가 <새 구두를 사야해>를 타인에게 소개하는 표현이다. 이 영화는 낯선 곳에서 만난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다.


여동생의 징크스 때문에 파리로 강제 동행하게 된 사진작가 '센'. 하지만, 큰 일을 치르러 가야하는 여동생은 센을 따돌린다. 낯선 파리 거리에 갑자기 홀로 남겨진 그. 방황하던 찰나, 일본인 프리랜서 에디터 '아오이'와 마주친다. 굽이 나간 아오이의 구두를 임시방편으로 고쳐준 센. 여권이 찢어진 문제가 생긴 센에게 아오이는 연락처를 건네고, 이들은 역시 재회한다.


센이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아오이는 친절한 여행 안내자가 되어준다. 둘은 함께 파리 거리를 걷는가 하면, 아오이의 작업현장에도 동행한다. 이렇게 친밀해진 둘은 식사도 하고 바에서 칵테일도 나눠마신다. 관계는 짙어져, 아오이의 집에 센이 머물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를 점점 알아간다. 하지만, 둘이 머무르게 될 공간은 다르다. 센에게 있어 파리는 여행지이지만, 아오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헤어질 운명임을 알지만 거스를 수 없는 관계의 진전. 이점이 필자가 <비포 선라이즈>와 빗대는 이유다. <비포 선라이즈> 속 제시와 셀린느 역시, 헤어질 걸 알면서도 강렬한 이끌림 하나만으로 함께 여행한다. 이별을 알기에 만남의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관념을 가시화시켜주는 작품. <새 구두를 사야해>도 이와 비슷하다. 제시와 셀린느가 거리를 걸으며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는 것과 대등하게, 센과 아오이는 자신들의 아픈 사정을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특히, 아오이의 아픈 사연을 알게 된 센은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해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사랑. 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야말로 생이별이다. 떠나기 전, 센이 아오이에게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고, 그렇게 둘은 세느강 유람선을 탄다. 흐르는 물살처럼 이별로의 흐름과 경험하는 이들. 아오이는 센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사람은 어디론가 가버리지만 에펠탑은 언제나 있잖아요."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한 자리에 서 있는 에펠탑으로부터 힘을 얻으며 스스로를 지켜온 아오이의 지난 삶이 배어있는 대사다.


둘이 함께한 3일 간의 시간은, 추억으로 남게 되겠지만 어찌됐든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은 명백하다. 애잔하지만 아름다운 로맨스다. 이 영화가 더 의미있는 건, 로맨스인 동시에 개인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는 미덕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오이 그녀, 얼마나 힘들었을까? 굽이 망가진 구두 대신 새 구두를 선물받은 것처럼, 그녀의 앞날도 밝게 빛나리라 믿는다.


사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하는 사건은 센의 여동생 이야기라 생각한다. 센과 아오이의 관계 흐름이 (상대적으로)유순한 물살이라면, 센의 여동생 사연은 거친 풍랑이다. 달콤쌉싸름한 분위기가 청명하면서도 쌀쌀한 가을 날씨와 곧잘 어울린다. 이 계절에 즐길 만한 로맨스영화를 찾고 있다면 <새 구두를 사야해>도 그중 한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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