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실천적 신비주의자로부터 배우는 지혜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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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거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말 그대로, 농부이자 철학(사상)자인 피에르 라비의 삶과 사상이 반영된 책이다. 공동 저자 장 피에르-라셀 카르티에 부부는 그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그와의 교류를 통해 피에르 라비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그보다 더 깊은 주장을 옮겨낸다.


요즈음, 이와 같은 책에 관심이 많다. '이와 같은 책'이라 함은, 자연주의, 평화주의, 자급자족 등에 대한 것들이다. 사실, 이렇게 농경으로의 귀환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책들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현자, 위대한 인물로 불리는 이들은 검소와 절제를 실천화했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그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것이다.


피에르 라비를 만나기 전, 스코트-헬렌 니어링 부부의 책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생활에 보다 감탄하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존경했다(물론,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그들의 삶을 (관념적으로라도) 지향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살육을 피해 채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등 작은 움직임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피에르 라비의 주장에서 많은 부분들이 스코트-헬렌 니어링 부부들의 생각들과 중첩됐다. 영속성과 지속성을 지닌 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결코 동·식물을 훼손할 권리가 없으며, 인류가 어쩌면 세계의 '약탈자'라는 의견 등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며, 소, 돼지, 닭들을 '살육'하고 있으며,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닌 미각채우기(욕망)를 위해 약탈과 착취를 일삼고 있다. 특히,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할 농부들조차 전통적인 방식의 생명 농업이 아닌, 화학비료를 이용해 '질보다 양'을 선호하는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도 주장하지만, 자연에 해를 입히면 우리에게도 반드시 '피해'가 오게 마련이다. 현재, 우리가 가뭄과 이상기온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우리가 자처한 것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땅과 흙에는 화학제품들이 넘쳐난다.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그래서 우리의 생활환경 자체가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이같은 주장을 펼친 피에르 라비는 단순히 뜬구름 잡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내세운 사상들 모두는 '경험에 의한' 실질적인 배움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어릴적, 프랑스로 입양된 그는 도시 생활에서의 부조리를 경험했고 그와 삶의 방향이 일치한 미셸을 만나 1960년 결혼 후 귀농을 결심했다. 그 이후, 생명 농업을 실천하고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에게 교육을 하는 등 '실천적인 농부철학가'가 되어왔다. 앞서 언급했듯, 철학자 라비는 교육에도 관심이 높았다. 생명 농업 수업이 있을 때에도 사람들에게 기술적인 부분만을 말하지 않고 신성한 마음가짐, 사물에 접근하고 영성을 부여하는 의식을 역설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과연 그의 삶이 행복할까? 그리고 피에르 라비는 농업과 농촌생활에서만 전문가가 아닐까? 지나치게 편향된 사상가가 아닌가? 등에 대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피에르 라비는 문명도 학습했다. '피에르 라비 역시 일련의 사실들을 목격했다. 그는 화학 회사들이 집중적인 마케팅으로 농부들에게 접근해 농약을 사용하도록 설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피에르는 그들의 상업 전략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농업 기술자들이 더욱더 높은 생산성을 약속해주는 화학 제품들을 찬양하는 필름을 보여 주는 모임들에도 참가했다. 그런 식으로 농부들조차 알게 모르게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잃어 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피에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만을 정도를 벗어난 그런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p. 49에서).'


피에르 라비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1헥타르의 땅으로 한 가정을 먹여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신성으로 돌아가려는 의식이 있다면 가정의 건강한 생활을 물론, 타인들에게도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삶이 배어있고, 그것을 권하는 텍스트를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서평을 마치려 한다. '해가 저물 때, 당신은 팔다리를 뻐근하게 하는 행복한 피로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낮 동안의 수고는 고요 속에 묵상한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무언의 기도를 드리듯 하늘을 바라보라. 당신은 파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고요한 정신이 우주 속으로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남자 피에르 라비다. 그는 우주의 거대한 품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 현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그는 행복하다. 그는 경이로워할 줄 아는 인간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에게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인위적인 세계를 견디지 못하는 많은 현대인들을 어머니 대지로 데려가기 위한 일들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102. 10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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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나는 시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과거나 미래 속으로 내던집니다.

거기에서 고통이 오며, 그 고통은 우리가 현재 속에 살 때에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영원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 p. 42


그렇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겐 그것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동물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은 결코 잘려진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 p. 51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은 피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이다.

그는 이런 슬로건들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지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 p. 184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의식을 갖는 것에서, 특히 자비심을 갖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이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비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자비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시간 개념에 대해 예를 들어 봅시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이란 지나가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정지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 아프리카 인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건 시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 p.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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