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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파장이 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진솔해서 강렬하다

어떤 표현방식을 택하든 창작자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에 드러내게 마련이다. 모든 창작자들은 그 길을 자연스럽게 택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창작자다. 필요에 의해 거짓을 창작할 때도 있지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창작자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 아름다움의 파장은 타인에게 깊을 울림을 전한다. 울림의 형태는 감동, 충격, 또 다른 창작으로의 영감 등 다양하겠지만, 어찌됐든 진솔한 이야기의 파장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다. 작품의 감독과 여배우는 실제 연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다. 사회적인 질타를 받는 관계인 건 사실이지만, 두 남녀의 사랑만은 거짓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관계망의 비난은 그렇다쳐도, 사랑까지 난도질 당하는 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장하게 마련이다. 많이 아프고 그로 인해 고통 받은 두 남녀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적인 명감독 홍상수는 여전히 스타일리쉬한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빚어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배우 김민희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온갖 비난과 질타를 받은 것에 반해, 영화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이다. 이 결과에는 '아이러니'와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 그들의 이야기다. 홍 감독은 영화 간담회를 통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독은 전작들에서 늘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이다. 따라서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져왔던 작품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에 선입견은 갖지 않았다. 홍상수와 김민희. 둘의 불륜을 스크린 밖으로 던져두고 영화를 감상하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영화는 둘의 이야기를 깊이 다루고 있다.


영화는 1,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여배우 영희가 친한 언니 지영과 함께 독일 함부르크의 이곳저곳을 거니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영희의 그는 지영과의 대화 속에서만 언급된다. 영희와 지영은 어떤 해변에 머무르고, 거기에서 영희는 돌연 누군가에게 업혀 사라지면서 막이 내린다.


2부의 시작.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 영희. 과연 무슨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까.



이어진 2부에서는 오랜 기간 독일에 살았던 영희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상황에서 진행된다. 영희는, 친한 선배 준희를 만나기 위해 강릉을 찾는다. 우연히 강릉에서 만난 옛 선배 천우와 명수. 이들과 함께 영희는 술자리를 갖는다.


한국에 돌아와, 술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영희



1, 2부 속 영희의 모습은 다르다. 모습의 변화를 1, 2부로 나누기보다는 술자리를 기준선으로 나누는 것이 더 좋겠다. 술을 들이켜는 영희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대담하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아진다. 진실되지 못한 사람과 사랑들에 외친다. 그녀의 목소리에 가장 큰 힘을 실어주는 인물은 천우다. 천우는 여배우 영희를 그 누구보다도 격려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스크린 밖 인물들에게도 비난할 정도이니까.


영희. 아니, 김민희 그녀는 영화 속에서 그동안 묵혀뒀던 심경을 내뱉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바깥 반응들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그녀의 외침을 꽤 진솔하게 담아낸다. 2부 마지막(영희의 꿈) 부분에서 모습을 드러낸 감독 상원 역시, 책 속 구절을 읊으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이 상징적인 장면은, 괜스레 서글프게 느껴진다.



여배우 영희와 감독 상원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로, 자신답게 살기로 다짐한다. 아직 영희는 이렇다할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숙해지고 매력적으로 변했다'는 응원의 말을 듣는다. 상원 역시, 늘 두통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을 겪지만 영화를 만들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나답게 사는 거야.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기로 했어." 영희의 대사는 김민희 그녀의 실질적인 다짐에 다름 아니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그녀가 영화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 오버랩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딱히 정해진 상태가 아니고, 자신에게 다가올 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던 그녀의 말. 이 말은 영화 속 영희의 세계관과 동일하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감독과 여배우 그들의 온전한 이야기라고 결론지어도 무리가 없다.


감독과 여배우는, 영화 제작과 연기라는 창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표현했다. 이만큼 예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홍상수와 김민희. 따라서 이 영화가 지닌 울림의 파장은 진솔해서 강렬하다. 불륜이라는 관계는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수 있지만, 둘의 사랑 만큼은 인정한다. 필자가 느끼기에도 김민희는, 영화 속 영희가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처럼 대폭 성장한 듯 보인다. 영희를 응원하는 선후배들처럼, 필자 역시 김민희의 복귀를 응원한다.


영화 속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장면. 영희, 아니 김민희는 예쁜 것들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먹먹하다.



*궁금점: 영희가 강릉 시네마테크에서 관람한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1부에서 김민희가 다리를 건너기 전에 했던 절, 2부에서 호텔 창문을 열심히 닦는 남자의 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그 의미가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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