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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영화 <헤드윅>

지독하고도 진솔한 사랑의 노래

우리는 늘 사랑을 갈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자 아리스토파네스의 <향연>에 따르면, 인류는 원래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완전한 존재였다고 한다. 이 완전한 존재는 각각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 세 부류로 나눠졌었다는 것. 하지만 최초의 인간들은 스스로의 완전함에 교만해졌고, 그에 분노한 신이 번개를 내리쳐 그들을 둘로 쪼개 나눴다는 것이다. 애초에 남자와 여자가 붙어있던 것이 갈라진 인간들은 이성애자,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가 한 몸이었던 인간들은 동성애자가 됐다는 것이 성 정체성을 가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그리스인들이 믿어온 주장이다.

영화 속 주인공 '헤드윅'과 그가 속한 '앵그리 인치'밴드는 전국 투어를 행한다. 이는, 세계적인 록스타 '토미'의 공연을 쫓는 과정이다. 헤드웩과 밴드는 왜 토미를 쫓는 걸까. 바로, 토미는 헤드윅과 깊은 사랑을 나눴던 연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의 이별은, 헤드윅의 사랑과 음악 모두를 앗아갔다.



사랑 뿐만 아니라, 헤드윅의 인생은 비참하고도 기구함 그 자체다. 성 정체성에서부터 환대받지 못한 그는, 의사의 잘못된 성전환 수술로 인한 고통도 짊어져왔다. 한편, 부모의 사랑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헤드윅의 소싯적 환경 역시 불우하다.

영화는 기구한 운명의 헤드윅을 조명하며, 음악으로 모든 상황과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헤드윅>은, 반으로 갈라진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사랑 찾기 여정인 동시에 기구한 운명에 처한 예술가의 삶을 노래한다. 동시에, 성 정체성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



<헤드윅>에 대한 호불호는 극으로 갈린다. 필자는 '호'의 편이다. 향락과 덜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도 많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드윅이 들려주는 선율과 노랫말이 아름답다는 것에 부정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섬세하고도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헤드윅>은 오는 6월 28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미 마니아들이 많은 작품인 만큼, 재개봉 소식에 열광적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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