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상희 단편 소설집 <델문도>를 읽었다. 델문도는 스페인어로 '세상 어딘가'를 의미한다. 그 뜻처럼, 수록된 단편들은 세계 곳곳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담아낸다. 총 아홉 편의 단편들로 구성됐으며, 각 이야기들은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영국, 호주 등 다양한 곳에서 청소년들이 마주한 세상을 보여준다.
여행. <델문도>의 핵심 소재다.
'아홉 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떠났거나, 떠나 있거나, 혹은 떠나려 한다. 세상 어딘가를 떠도는 누군가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여행자들이다.' 작가의 말이다.
단편집이기에 어떤 챕터부터 먼저 읽느냐는 독자의 자유다. 나는 늘 그랬듯, 첫 번째 선택은 첫 단편부터 선택해 읽었다. 첫 챕터의 제목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붕대를 한 남자'. 붕대를 한 남자가 우연히 한 소년의 집에서 물을 얻어마시면서 벌어지는 (어쩌면 지극히 일상적인)에피소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전개 방식이 좋았다. 청소년의 호기심과 독자의 그것의 동선이 일치한다. 붕대를 한 남자는 얼굴과 손이 없다. 목에서부터 얼굴까지는 붕대를 감았고, 손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나무에 의존해 있다. 그런 생경한 모습의 남자에 호기심을 품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붕대를 한 남자는, 소년과 아버지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1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홀연히 떠난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로부터 기인된' 것이라 한다. 더불어 최상희가 이 소설집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호주로부터 온 메일 한 통이 최상희에게 영감과 소재를 던져준 셈이다. 나 역시 첫 챕터 때문에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어지는 '노 프라블럼'은 열여섯 살의 인도 소년의 러브 스토리를, '필름'은 독특한 여행담을 사진으로 남긴 한 소녀에 대한 상상을 담은 한 사진관 주인 아들에 관한 이야기.
소설집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챕터는 '페이퍼 컷'이었다. 일본 영화풍이 감도는 소소하고도 따듯한 이야기다. 남자 고등학생이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공항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인데,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 작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뚱뚱한 여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이 말을 걸게 만드는 섬세한 손재주가 있다. 그 손재주 덕에 얼어붙었던, 편견으로 가득 들어차있던 소년의 내면은 한층 성장해간다. 큰 위기와 갈등이 없이도 마음을 꽉 채우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좋다.
그 외에도 <델문도>에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펼쳐진 이야기, 누군가의 상실로 인한 그리움이 표현된 이야기 등이 포함돼 있다. 각 단편들이 공통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소재인 '여행'. 여행은 어찌됐든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낯선 환경과 새로운 경험으로 인한 성장. 그로부터 얻는 깨달음.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늘 갈망하고 또 실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델문도>는 소소하게 읽기에 좋은 작품. 또한 청소년이 읽으면 더 좋은 작품이다.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작가가 제시한 상황들에는 성장에 발판이 될 만한 '주변의 멘토'들이 등장한다. 나도 주인공들이 만난 멘토들과 마주할 날이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