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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화 Jan 31. 2020

작심일일 프로젝트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아빠?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낮잠을 쬐금 잤다가, 공연히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제목이 없는 새 문서들만 펼쳐 놓았다가 닫기를 120번 정도 반복하다가, 몹시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아빠는 1월 29일, 지금 현재 2개월차 실업자이고, 실업급여를 타기 위한 관문이라는 '워크넷을 통한 구직활동'을 위해서 그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아빠는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는데, 내가 목격한 그의 노트북은 열에 아홉이 카드게임 화면이었다.(아무도 알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내 질문에 이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라는 대답으로 말문을 막은 전적이 있다.)


 ...사람이 항상 쉬지 않고 뭔가를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그러다 내 인생이 망하면?

 열흘 정도까지는 괜찮을걸. 열흘 정도로 인생이 망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넌 벌써 2주일이나 놀고 왔잖아. 하면서 아빠가 도로 방으로 향하는 내 등 뒤에다가 얘기했지만 못 들은 척 했다.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자 마자, 단 하나도 쓸모가 없는 쓰레기 같은 문장들을 전부다 닫아서 없애 버리고(혹시 몰라서 저장은 했음), 시간을 쪼개서 보던 <멜로가 체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서른인 여자 셋이 나오는 드라마인데, 그들은 다 무언가가 막 되었거나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별안간 살짝 기분을 잡쳤다. 서른이 되려면 이제 11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조바심이 난 것이다.


 불과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2020년에는 당장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물 여덟에서 스물 아홉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 나는 베트남 하노이의 호안끼엠이라는 곳에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하노이의 젊은이 거의 모두가 쏟아져 나왔다, 내 예상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폭죽을 터트렸다. 해피뉴이어!하고 서로를 향해 인사도 했다. 또 곁에 연인이 있다면 새해 첫 키스를 나누었다. 더러 술에 취한 사람들은 내 발을 밟고도 모르는 척을 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람이 한 데 엉겨서 도저히 정신병이 걸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할 진풍경이 펼쳐졌고, 나는 두 번 다시 이 곳에 올 일은 없을 거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사람들 속에 섞여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두 손을 모아서 눈까지 감고 기도를 했다. 제가 쉬지 않고 무언가를 쓸 수 있게 해주시고, 그로인해 통장에 쉬지 않고 인세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아무튼 이렇게도 허무하게 소원이 불발된 것을 보아하니, 베트남어로 빌었어야 했나 싶다. 방금 이 문장을 쓰면서 스스로의 멍청함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엄마가 늘 해줬던 얘기가 있다. 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마음을 삼일마다 새로 고쳐 먹으면, 결국은 매일매일 노력하게 된다고. 정말로 감동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큰 맘 먹고 산 숀리 스쿼트 머신에는 곧 갖다 버릴 자동차 핸들 커버랑, 수건 같은 것들이 걸려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로 좋은 말임은 틀림이 없다. 아무튼, 요즘 작심을 삼일마다 하는 것으로 아무래도 모자란 것 같으니 작심을 매일 해야하겠다. 이상화의 작심일일 프로젝트, 시작이다. 시작.


 지난 몇 개월간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지 않았는데(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네이버 블로그에다 에세이를 썼다), 그 동안 나에게는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아빠와 함께하는 환장의 도로연수는 현재 진행중에 있으며, 앞서 말했다시피 2주간 베트남 여행도 다녀왔다. 또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며, 작품 두 개의 출판 준비를 대강 마쳤고, 두 번의 소개팅을 했고, 근래에는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좋아하는 남자가 생겨버린 것 같다. 죽 늘어 놓고 보니까 얼른 무엇이든 쓰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데, 읽는 사람이 재미있어 할 만큼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재밌는 문장들을 잘 쓰고 싶지만 언제나 그것은 내게 어렵고, 아마 죽기 전까지 나는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할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든다. 그렇지만 작심일일의 마음으로 노력해보려 한다.


 나는 스물 아홉이고, 앞으로 열심히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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