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가 무서워요
드디어 내가 엄마 차를 부숴먹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다치지 않았다. 대신 자동차 앞 범퍼가 움푹 패여 들어갔고, 엄마의 마음이 좀 다쳤다. 엄마는 노발대발하면서 당장 돌아오는 월요일에 망가진 차를 원상복구 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내가 몇 번 더 긁어먹을 것이고 운이 좋지 않으면 또 부술 것 같은데, 조금 더 타다가 조금 더 망가지고 나서 고치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수영을 시작한 지 1년이 된 기념으로 수영복을 몇 벌 구입하려고 했는데, 앞으로 근 2-3년 치의 수영복이 다 날아간 것 같다. 금속성을 가진 것들은 아무래도 내게는 너무 차갑다. 그래서 야속하기까지 하다. 당분간은 똥 싸고 오줌 싸는 시간까지 아끼고 줄여가면서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 글자라도 더 써서 돈 벌어야 하니까.
놀이기구 타는 것을 무서워하고, 귀신얘기를 들으면 잠을 못 자고, 벌레만 보면 누구보다 소란스럽게 고함을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잡아줄 누군가를 모색하기는 하지만, 나는 겁이 없는 편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내가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다고 얘기했을 때,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넌 운전 곧 잘할 것 같긴 해."같은 말로 나를 독려해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사람들은 나를 아주 잘 못 봤다. 나는 내가 운전대를 잡은 첫날 그 사실을 알았고, 옆에 앉은 강사님도 그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기는 했지만, 연수 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디가노!(다급)", "어디가노?(황당)", "어디가노?!(극대노)" 정도가 된다.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연수를 받는 날에는 옆에 탄 강사님이 나의 불합격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꼭 한 번만에 붙을 필요가 없으며, 두 번째 시험을 칠 때는 더 잘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재시험 응시료가 도미노피자에 갖은 토핑을 추가하고, 스파게티를 추가하고, 큰 콜라를 추가하는 것보다 더 비쌌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덜컥 운전면허증을 받고 나서는 겁이 났다. 면허를 따기 전까지야 어딜 가든 눈에 띄는 노란색 차-'운전면허 자동차학원'이라 쓰여있고, 실제로 그 학원에 소속된 자동차-의 핸들을 쥐었지만, 앞으로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자동차를 몰아야 했고, 또 도로 위의 사람들은 나의 바람보다 훨씬 더 냉혹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절대로 나의 일일 도로연수 강사가 되어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름 돋는 선견지명.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전부 코웃음을 쳤다. 타이밍이 나쁘게도 때맞추어 아빠는 실업자가 된 참이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러면 니가 대체 집에서 하는 게 모야앙?"라는 의기양양한 엄마의 말 한마디가 너무도 손쉽게 아빠와 나를 한 차에 실었다.
나는 아빠와 싸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빠를 유치원생처럼 대하면 화나 짜증을 내지 못 한다. "아빠가 지금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서운하겠어, 안 서운하겠어?" 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연수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조로웠다. 물론, 가끔 당황하면 브레이크를 대신해서 액셀을 밟아 버리는 돌아버릴 반사신경 때문에 주유소를 한 번 뿌술 뻔 하긴 했다. 아빠는 그 때 살짝 화 비슷한 것을 내긴 했다. "차 뿌수는 건 괜찮은데, 주유소 뿌수면 상화야, 우리 집 팔아야한다." 라고 하면서. 가끔 가다가 조수석에 앉은 아빠의 목소리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아빠는 창문에 바짝 붙어서 손잡이를 꽉 쥐고 있다. 나는 서운한 내색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제법 나의 운전실력이 늘었다고 으스대려는 참이었는데, 아빠는 매일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가족들이 꾸벅꾸벅 졸거나 자는 날이 오기는 할까.
면허증만 따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에도, 수영장에 갈 때에도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면허증만 나오면 진짜 어디든지 당장 다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어느 것 하나 내게 관대하지가 않다. 나처럼 귀엽고 마음이 나약한 사람에게는 좀 관대할 수 없나? 아, 방금 깨달았는데 이런 뻔뻔한 심보 때문에 세상은 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길이야,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속도가 너무 높다면, 속력을 낮추라고 주의를 줄 것이고, 어떤 차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도 알려준다. 하지만, 앞차는 내게 언질도 없이 갑자기 멈추어 설 수도 있고, 뒤차들은 성격이 급해서 좀처럼 나의 차선 변경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처음의 기대와 현실은 너무 달라서 사기당한 기분까지 든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탄탄대로라고 믿었는데, 암담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런 배신감은 살면서 자주 겪어 왔기 때문에 무척 충격적인 지경까지는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재능이 있기 때문에 글 써서 돈 버는 삶을 선택했지만, 알고 보니 나보다 훨씬 더 잘 쓰는 사람들은 많았고, 정작 내 글은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를 웃도는 정도란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당분간은 운전대를 잡지 않으려 한다. 운전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하지만 적응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에 운전이 능숙해진 드라이버가 된다면, 나는 초보운전자들에게 친절하게 굴 것이다. 내 앞으로 들어오겠다고 깜빡이 켜놓고 우물쭈물거려도 느긋하게 기다려 줄 거다. 주차를 하는 데에 엉뚱하게 핸들을 감아도 보채지 않고, 절대로 경적을 울리지 않겠다. 나는 도로 위에 혼자 내던져지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까지 했으니까.
후, 강인한 어른이 되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도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