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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화 Feb 10. 2020

이왕이면 멋있게 늙고 싶은데

카페에서 만난 어른들

 아가씨! 뜨거운 걸로 두 개! 계산은 나중에 나갈 때 할게. 알겠제?


 햇수로 카페 아르바이트 4년 차. 모든 유형의 손님들로부터 통달할 법도 한데, 사실 아직도 나는 손님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손가락 사이에 카드 꽂아서 건네기, 매대 위에 현금 던지듯 툭 놓기, 인사 씹기 정도로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엥? 싸가지 없는 새끼네. 하고 뒤돌아서 혼자 욕하고 까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자존심에 스크레치를 내려면 글 서두의 대사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여태까지 내게 저런 문장을 구사했던 손님들의 90% 이상이 중년 남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에게 상처 받아 울었던 날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때 그 손님도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 날은 단체 손님을 받을 수가 없었다. 제빙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쓸 수 있는 얼음이 많질 않았고,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매장을 혼자서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행한 아르바이트생은 바로 나였다. 매장으로 단체 문의 전화가 몇 차례나 왔었는데,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앞 타임 직원에게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잠시 후, 스무 명이 조금 안 되는 단체손님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전화를 받고도 무작정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매장 사정을 거듭 설명했지만, 단체의 대장 노릇을 하는 중년의 남성은 다그치는 듯하면서도 설득하는 듯한 모호한 어조로 나를 몰아세웠다. 나중에는 나더러 사장을 데려오라며 윽박지르면서 성질을 냈다. 남자의 입에서 나는 술냄새 때문에 나는 남자가 말을 할 때마다 숨을 참았다. 남자는 내게 몹시 상처가 될 법한 말들을 큰 소리로 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말은 "넌 그냥 아르바이트생이잖아. 돈을 줄테니까 그냥 만들라고. 그게 돈을 받고 하는 네 일이잖아."였다. 시발..


 아르바이트생은 감히 손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게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연락을 받은 앞 타임 직원이 근처 마트에서 얼음을 구입해 가게로 돌아왔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음료를 서빙하는 동안에는 "이 가게 직원은 통 웃질 않네.", "음료가 너무 늦게 나왔는데 서비스 같은 건 없습니까?"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손님이 왕이던 세대의 사람들은 표정 하나 바꾸지도 않고 그런 말들을 곧잘 하나보다 싶었다. 나중에 엉망으로 그 사람들이 어질러 놓은 테이블을 치우다가 내 인격이 고작 최저시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서러웠다. 


 나이 들어서 저런 어른은 절대로 되지 않아야지. 


 말로 하지는 않지만 종종 혼자 속으로 그런 다짐을 자주 한다. 뉴스를 볼 때도, 길을 가다가도 자주 그런다. 이런 식의 다짐을 할 일이 많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롤 모델을 하나 두고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저 사람을 흉내 내면서 사는 것보다, 저 사람처럼은 절대로 되지 않아야지라고 마음먹고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실제로 그게 더 쉽기도 하고.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며칠 전에는 저녁을 먹고, 집 앞 카페에 작업을 하러 내려갔다. 저녁 시간쯤이면 항상 식사와 함께 반주를 걸치고 들르는 중년이 많은 카페였다. 어김없이 카페는 시끌벅적했지만 그 날은 유난히 좀 심했다. 6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 다섯 명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옮기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 나잇대의 중년 남성들은 제 앞에 놓인 잔을 아주 빠르게 비우고, 잔이 비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정말로 큰 소리로 짧고 굵게 떠들었다. 이 중에 누구의 좆이 가장 큰지, 요즘에도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지, 58년생 중 어떤 선배가 가장 재수가 없는지, 어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가시나가 어땠는지. 추정하건대, 그들은 거기 앉아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고 빠르게 떠났다. 나는 아주 미간에 주름이 다 잡힐 정도로 인상을 쓰고 있다가, 그들이 가고 나서 두어 시간 작업을 하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쩌다가 중년의 남성들에게 유난히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골몰했다. 그러다 노인복지센터를 지났는데, 복지센터 앞에는 어르신 돌봄 교실에 대한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어른은 머지않아 어르신이 되고, 어르신은 돌봄이 필요하다. 어른과 어르신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른과 어르신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굉장히 좁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자신이 좆이 얘보다는 조금 더 크다고 주장하는 그 어른들도 곧 돌봄이 필요해지겠지. 그때는 해봐야 쟤나 얘보다 한 마디쯤 더 큰 좆이 얼마나 더 의미가 있을까.


 이제 막 뒤뚱거리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어색하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엄마들은 "누나한테 안녕하세요 해."라고 했었는데, 요즘에는 아무래도 '누나'보다야 '이모'라는 호칭이 편해졌다. 이미 학교 동기들 중에는 아기 엄마들이 된 애들도 제법 많았고, 실제로 나는 이모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나이가 되었으니까. 나 역시도 누나에서 이모로 넘어가는 순간이 몹시 짧고 급작스러웠는데, 아마 어른에서 어르신으로 넘어가는 순간 또한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른들도 처음 경험해보는 어르신으로의 삶들이 적응되지 않고, 엄청나게 낯설겠지. 서른을 목전에 두고도 애새끼의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나와 내 친구들이 철이 들길 바라는 나처럼, 어른들 역시 늙고 노쇠해가는 몸뚱아리에 갇힌 어린애들일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간 그들에게 받았던 홀대와 무례함들이 조금은 용서가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런 어른은 절대로 되지 말아야지에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도대체가 잘 늙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내게 숙제로 남아있는 의문인, '어떤 어른이 될까?'와 견주어 자주 고민할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같은 선상에 있는 고민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내가 매번 이 고민들을 거듭하면서 더 나은 어른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해가 되면 친구들에게 올해도 나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보내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엉뚱하게 쌍년이 되어간다면, 내 뺨을 때려도 좋으니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잘 도와달라고. 그만큼 나는 손가락질받지 않으면서 나이 들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조금 더 느긋해지고 차분해지고도 싶은데, 통장에 돈이 좀 많아지면 그런 심성쯤이야 너무 쉽게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오늘부터는 또 열심히 한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돈이 될 상업 소설을 써야겠다. 오늘도 잘 오다가 말미에 갑자기 분위기 부귀영화로 글을 망친 기분이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이대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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