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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화 Jul 25. 2020

구순 파티는 어디서 할래?

 안녕. 네 생일을 챙겨준 게 벌써 10번을 훌쩍 넘었어. 몇 밤만 더 자면,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날보다 서로를 알고 지낸 날들이 더 많아지겠다. 아마 넌 지금 '그건 아닐걸.'하고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마, 시간은 언제나 돌아보아을 때 훌쩍 지나있는 법이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날은 훨씬 더 가까울 거야. 그때, 있잖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가 아주 늙은 할머니가 되었을 때를 자주 상상해. 팔자주름이 엄청 짙어졌을 것 같아. 턱 밑으로 축 처진 피부가 좀 쭈굴쭈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해. 그치만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거야. 가끔씩은 스트릿 브랜드 티셔츠도 입고, 왕 커다란 귀걸이도 할 거야. 내 자식새끼가 "엄마, 제발 나잇값 좀 하세요." 같은 빌어먹을 소리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개를 키울래. 넌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했었지? 우리는 어쨌든 무언가 들의 엄마이기는 하겠다. 개할머니나 고양이할머니로 불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네 별명이 좀 더 듣기는 좋겠다. 개할머니는 어감이 좀 그렇잖아. "안녕하세요, 개할머니." ㅋㅋㅋ


 벌써 우리 스물아홉이 됐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낸 일 없이 그냥 하루들을 꾸준히 흘려보내기만 했어. 내가 상상한 것보다 좀 초라한 스물아홉이 된 것 같거든. 그래도 너를 비롯한 친구들을 보면 안심이 되는 때도 있어. 뜬 구름 같은 꿈들이 시간에 휩쓸려 가버렸어도, 너는 남아 있잖아. 적어도 빈손은 아니야. 이만하면 아주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나를 그냥 지나가지 않고 머물러줘서 항상 고마워. 네 배려와 호의와 친절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알아.


 너는 내가 인생을 아주 엉망으로 살지는 않았다고 방증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 또한 네 인생에서 영원히 그런 사람이 되겠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네가 얼마나 멋지고 따뜻한 사람인지 소문내 줄 수도 있어!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소문의 신빙성을 위해 나는 조금 더 그럴듯한 사람이 되고 싶어!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는 길은 아직까지도 멀고도 참 험해. 이 숙제는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어쨌든 우리는 수많은 실수를 하고 또 서로의 실수를 목격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적당히 모르는 척해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그 일련의 과정들이 수난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면서 겪는 통과의례쯤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서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있다면, 단호하게 고백하고,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사이가 되자.


 항상 내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질 때, 잘하고 있는 거라고 진심을 다 해 위로해줘서 고마워. 네 말 한마디에 나는 정말로 거지 같았던 기분이 괜찮아지는 때가 많아. 나는 앞으로도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 내 미래와 근사한 어른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실패하고 실수하는 나를 자책을 할지도 몰라. 네가 그런 얘기에 지겨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 가끔씩은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줄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언제나 내 농담에 호의적이었어. 쓸 데 없는 헛소리에도 깔깔 웃어주는 네 덕분에, 나는 내 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 진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형편이 없지만, 멋진 문장을 많이 만들게. 그래서 아주 그 문장에 걸맞은 네 친구가 될게. 너는 지금처럼 나한테 잘 웃어주면 참 좋겠다. 그걸로도 빈틈없이 충분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기대된다. 우리는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늙어갈까? 더 많이 같이 여행을 다니고, 더 많은 것들을 같이 경험하고, 더 많은 프레임 속에 함께 담기기도 하면서, 부디 우리 얘기를 끊임없이 만들자.


 네 서른 번째 생일은 물론이고, 환갑도, 구순도 챙겨줄게. 건강하자.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야. 넌 나한테 진짜 소중해.


 2020. 네 생일에, 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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