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화 Dec 12. 2020

아마 나는 겨울에 죽을 것 같다

 아마 나는 겨울에 죽을 것 같다.


 아파서 죽을지, 늙어서 죽을지, 자살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내 기일은 겨울일 것이다.


 요 며칠 정말 오랜만에 끔찍할 정도로 아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식사를 마쳤지만, 속이 영 불편했다. 남동생이 바늘로 손을 따주고, 엄마가 등을 두드려줬지만 매스꺼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잠들기 전에 변기 앞에 앉아 먹은 저녁을 좀 게워냈다. 자려고 누웠다가 몇 번이나 더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나중에는 더 뱉어낼 게 없어서, 헛구역질을 하다가 변기를 안고 좀 울었다.


 너무 아프면 병원에 다녀오라고 얘기하면서, 엄마가 출근을 했다. 병원은 고사하고 씻을 힘도 없어서, 이틀간 몸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죽은 듯 잠만 잤다.


 날씨 탓을 했다. 추워 몸을 웅크린 채로 밥을 먹느라, 체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다지 겨울을 좋아하지 않던 어린 이상화는, 겨울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어른이 됐다. 겨울에는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일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이러쿵저러쿵 내 얘길 하는 것도 귀찮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지도 않다. 꼭 겨울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하루 종일 침대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겨울이 끝났으면 좋겠다, 너무 춥다, 겨울이 싫다 같은 소리만 반복하면서.


 엄마도 젊을 때는 나처럼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겨울만 왔다 하면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늙으면서 체질이 바뀐 것인지 그다지 춥지가 않다고도 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내가 겨울에 내성이 생기기 위해서는 스무 번 정도의 겨울을 더 보내야 한다. 끔찍.. 하루아침에 엄마와 동년배가 될 수 없어 안타깝다.


 부지런히 일하지 않은 겨울임에도, 최근에는 예기치 못 한 기회들이 따라 좀 얼떨떨하다. 최근 가슴 떨리는 제안들을 몇 개 받았다. 하나는 오래전 내가 쓴 소설을 웹툰화했으면 한다는 출판사의 연락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둘 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인 데다 좀 근사하게 들리기까지 해서 무척이나 떨리고, 걱정이 된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알 수 없는 일을 분별해내는 결단력이 서른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두고 더 고민해 볼 일이다. 한동안은 잠을 설치지 않을까 싶다. 


 덤덤한 척했지만 나는 사실 실패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게 무섭다. 무너진 나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말실수를 하고, 더 이상은 너무 끔찍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너무 바빠서, 추울 틈이 없는 겨울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노트북 앞에 거북목을 하고 앉아 있는 상화.. 그만 하는 게 좋겠다.


 겨울마다 내가 고생하는 이유가 수족냉증 때문이라며, 굳이 굳이 레몬 생강청을 담아야겠다는 엄마를 좀 말리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구순 파티는 어디서 할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