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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봉봉 Jul 30. 2019

연차, 쓰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 ①

내 연차를 부디, 건들지 말아주세요!

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직장인들에게는 연차라는 것이 있다. 직장 생활을 꽤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차 제도. 솔직히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내가 갔던 회사들마다 조금씩 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 골자는 비슷했다. 입사 1년 이후, 한달 만근시 1일의 연차가 생성이 되고 입사한지 1년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내년 연차를 당겨서 쓸 수 있다는 뭐 그런 느낌. 그런데 솔직히 연차, 제대로 써본적 없다. 연차를 다 써본적도 없을 뿐더러, 다 못쓴다고 해서 돈으로 받아본 적도 없다. 

나에게 있어서 연차란, 퇴직 날짜 정해지면, 퇴직 날짜 전에 붙여서 몰아서 쓰는 일종의 퇴직 휴가 같은 셈이었다. 그런데 이 연차에 대해서 또 할말이 꽤 많다. 지금부터 연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첫번째 이야기


장인에게 연차는 정당한 권리이지만, 그걸 갖고 또 감놔라 배놔라 하는 분들이 꼭 있다. 제일 많은 경우가 입으로는 연차 좀 쓰라고 해놓고, 막상 연차 쓰겠다고 구두로 우선 말씀 드리면 연차 너무 많이 쓰는거 아니냐고 한소리 하는 분들이다. (많이 쓸 만큼 연차가 많으면 그런 소리 듣고 억울하지도 않다. 연차라는 것은 근속 연수에 따라 올라가기 때문에 연차가 많으면 당신이 나보다 더 많겠지.) 


“팀장님, 저 다음주 금요일에 연차 써야 할 것 같아서요.”

“금요일? 갑자기 왜?”

“아, 그날 일이 있어서. 일정에는 무리가 없도록 할게요.”

“그래, 뭐. 지금 많이 바쁜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금요일에 뭐, 어디 가나봐?”

“네? 아, 집에 일이 있어서요.”

“별일은 아니고? 집안일? 여행가? ”

대충 취조는 이정도에서 마무리지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캐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렬한 팀장일수록 물음표는 꼬리의 꼬리를 물고 점점 길어진다.


“비밀이야? 아니면 남자친구랑 여행이라도 가는거야?”

“네? 아니 정말 집에 일이 있어서요.”

“그래? 집에 일이 있다고 말해놓고 면접 보러 가는건 아니지?”

“네? 에이 설마요.”

“김대리, 의뭉스러운데?”

젠장. 진짜 물귀신이 따로 없다. 이정도면 거의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연차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권리에 있어서 허가를 구하는 것은, <조직과 업무>에 무리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관리자에게 일정과 인력에 무리가 없는지를 체크해달라는 의미인것이다. 당연히 일정이 급하다면 <조직의 업무>에 손이 들릴 것이고, 일정이 급하지 않다면 <개인의 연차>에 손이 들릴 것이다. 


즉, 팀장이 체크해야 하는 것은 팀의 일정, 팀원의 업무 일정 등이며, 이 팀원이 연차를 쓰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그분의 체크 밖의 일인 것이다. 

구구절절, 내 입으로 


동네 미용실에 12시 이전에 가면 할인해준다고 해서,
엄마랑 같이 나란히 모닝펌 하러 가려구요.


라는 소리를 팀장에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많은 팀장님들이 <결재사인>을 무기로, 너무도 당연하게 팀원의 사생활을 수집하려든다. 그래놓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한소리를 꼭 덧붙려고 한다. 잔소리, 잔소리. 그래도 어쩌겠냐, 일단 급한건 <허락>이니, 우리는 그 잔소리를 마치 신의 목소리라도 되는냥, 경청하는 척 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무튼 한소리 듣고 나서 구두로 허락 받은 다음, 연차쓰겠다고 기안 상신을 하면, 꼭 연차 쓰는 직전날까지 결재 안해주다가 늦게서야 결재를 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솔직히 많다. 

그런 분들을 보면, 말은 안하지만 눈빛이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네가 하는 걸 봐서
내가 결재를 빨리 해줄지, 늦게 해줄지
결정해야겠지롱~ 메롱~ 약오르지롱~


물론 아닐 것이다. 설마 진짜 나쁜 사람이 아니고서야, 신종 갑질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할까. 부디 내 자격지심이 부른 오해라고 믿고 싶다.


물론 바로 결재를 해주시는 팀장님도 계셨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와 가장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던 부장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정말 연차 결재는 칼이셨다!(사랑합니다, 부장님!)

하지만 그런 부장님이 있는가 하면, 연차 전날 퇴근 직전까지 피를 말리는 존재들도 있다.


“팀장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연차 사용건으로 기안 상신올렸는데, 결재 부탁드려요.”

“알아. 김대리, 바로 해줄게.”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까지 그려보였지만, 말과는 다르게 회사 인트라넷이 너무 조용하다. 연차 승인이 되면,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무언가 메시지가 올라와야 하는데. 나의 모니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그렇다고 또 이야기할 수는 없다. 빚쟁이도 아니고, 꼭 독촉하는 것 같으니. 나는 불편해도 불편하지 않은 척. 조급해도 조급하지 않은 척. 불안해도 불안하지 않은 척. 기다려야 한다. 기안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척 말이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니터. 이럴 땐 퇴근 인사를 하면서 ‘리마인드’를 한번 시켜드려야 한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리고 팀장님, 바쁘시죠? 저 연차 결재 올린거, 잊지 말아주셔용~”

최대한 그분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독촉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면서도 나의 의견은 피력할 수 있도록 애교와 예의를 반반 섞어가면서.

“아차! 김대리. 내가 오늘 너무 바빠서 깜빡했다. 지금 바로 해 줄게.”

“아, 네. 알겠습니다.”

‘젠장’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지만 미소로 그것을 억누르고 적절한 어조와 어투를 사용하여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 말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결재를 해주시면 “땡큐 베리 마치”지만, 그렇지 않으니 내가 여기에서 썰을 푸는 것이겠지. 당연히 그 분은 결재를 해주지 않으셨고, 그렇게 몇번을 바쁜 척, 정신없는 척을 하고 나서, 연차 예정일 전날 퇴근 시간 직전에서야 결재를 해 주셨다. 마치 짠 것처럼.




이왕 하루 쉬는 거, 기분 좋게 쉬게 해주면 어디 덧나나? 왜 꼭 그렇게 퇴근 직전까지 사람 애를 태우는 건지. 진짜 내 연차 내가 챙겨 쓰면서도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지만, 참는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생활을 어렵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웃긴건, 이렇게 연차 하루 쓰는 것 가지고도 사람 애간장을 태우면서 평소에는 마치 쿨한 팀장인 척, 워라벨을 즐기는 대표인 척, 툭하면 ‘여러분, 연차 쓰세요! 잘 쉬는 사람이 일도 잘합니다.’라고 입바른 소리를 한다. 


차라리 말을 말던가. 



진짜 위선적이라고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일단 장단을 맞춰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생활을 어렵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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