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2019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니, 그 이전부터 방황했던 20대 중후반의 기억이 통으로 흐리멍덩하다. 아마, 코로나 핑계를 조금 댈 수 있을 것이고, 어머니의 수술도 조금 거들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정신병에 대한 진단 거부도 조금은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27, 28, 29 만으로 3년을 혼자 서울에서 보냈고, 나의 야심찬 독립의 꿈은 처참히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로 돌아갔다’ 란 말, 생각해 보니 너무하네. 디폴트값이 실패라는 거잖아.
의미 없이 보낸 하루에, 몸을 짓누르는 자괴감을 느낄 때면, 남들이 지친 얼굴로 퇴근하는 인파가 가득한 지하철역을 하루 종일 먹고 자느라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지나치며 겨울바람에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수치심을 느끼며 한강이나 안양천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정처 없이, 한 곡을 2시간 동안 반복 재생하면서 걷다가 다리가 지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엔 어김없이 술을 사와,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그런 날엔, 집에 와서 글을 쓸 때도 있었는데, 내 마음을 단어로 문장으로 하나하나 적다 보면, 키보드에 열 손가락을 올려놓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텍스트를 쏟아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브런치나 블로그에 업로드하면 그래도 뭐 하나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했다.
근데 지금은 글을 쓰지 않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 언젠가 볼 거라고 확신하여 영원히 보기를 미루는 어떤 영화처럼. 나는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언젠가 다시 글을 쓸 거야.라고 생각하고 어떠한 글도 완성하지 않은 지가 두 해는 넘긴 듯하다.
글도, 성과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하듯,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글을 쓰면서도, 문장의 완벽함을 걱정하고, 내 감정의 과잉이나 오류를 검열했다. 글에 재능이 묻어나지 않음에 좌절하며 피어오르는 불쾌감과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어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어린아이처럼, 글을 멈췄다.
사실은 며칠 전, 정신없이 일을 하던 중, 5년 전 브런치에 올렸던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남겼다는 알림이 왔다. 어떤 내용의 글이었는지 나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그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마음이 뭉근해졌다. 나는 그때 진솔하고, 예쁜 글을 써놓았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결국은 그 평가를 회피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놓아버렸을까.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 게 죽을 만큼 어려웠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한글을 켜고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려 10p 폰트크기로 A4 한 장을 채워가는 중이다.
이제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 싶기도 하다. 여전히 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자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걸 인지할 힘이 생겼다. 내가 지금 어떤 범주에서 잠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마치 실패로 돌아오는 것처럼.
실패가 내 제자리라는 것을 자각한다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 이후의 일은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일이다. 가끔은 그저 웃기기도 하는데, 나의 ‘작음’에 자조적일 수 있다는 게 이제야 어느 정도 ‘큰’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서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오늘은 무정한 사람에게도 내려지는 기대하지 않은 석양을 만났다. 이런 아름다운 순간에 가슴이 찡해진 게 오랜만이다. 이런 감각을 참 좋아하곤 했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철길에 놓인 자갈이 빛에 반짝이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던 소중한 모습을 한 사람이었는데,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나는 그럼에도 여전하다는 게 지옥 같던 날들을 지나, 오늘은 나의 여전함이 나쁘지 않게 여겨졌다.
그게 참 다행스러웠다.
문득, ‘좋아요’ 눌러 준 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