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해야만 시작된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전교생이 50명이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시골중학교였다.
: 학부모들끼리 서로 다 아는 사이이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점심이 되면 전교가 다 알게 되는, 그만큼 작고 좁은 학교.
같은 반 학우는 해봤자 15명 내외였고 그조차도 거의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 초등학생 때와 다를 게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매 점심시간 때마다 책상을 양옆으로 민 뒤 다 같이 아이돌 춤을 추었고 저녁엔 불이 꺼진 학교에서 손전등 하나를 켜고 일명 귀신체험을 하곤 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야자시간이 오기 전까지 교실에 모여 남자 아이돌 영상을 틀어놓은 후 어느 그룹이 더 잘생겼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였고 어떤 날은 선생님들 몰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고 무서운 영상을 보다가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선생님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같은 학교로 진학한 친구는 4명밖에 없었고 그중 딱 한 명과 같은 반으로 배정되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입학 첫날 교실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내 자신감을 무시라도 하듯 시내의 큰 중학교 출신 친구들의 기에 눌려 첫날부터 한 해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스스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나가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무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무리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소속감의 부재에 입학 초반에는 약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점점 친구들을 사귀어가고 학교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눈에 띄었다. 분명 같이 노는 친구들은 시끄럽고 활발한 친구들인데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진중해 보였다. 평소엔 나긋한 목소리였다가 웃긴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웃었고 그 웃음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주었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난 후 그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다 생각했고 왜인지 모르게 웃겨주고 싶었다. 그 시기 우연찮게 내 앞자리에 앉게 된 그 친구와 매번 머리카락으로 장난치고 별 거 아닌 것들로 시시덕대며 점점 친해졌다.
친해지고 난 후의 그 친구는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던했고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았으며 모두에게 배려 깊었다. 또래에 비해 성숙한 면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러한 공통점은 서로를 소위 말하는 ‘절친’이라고 생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업이 지루할 때면 그 친구에게 쪽지를 던져 대화를 주고받았고 서로 키득대며 한참을 웃었다.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을 먹으며 반찬투정을 하고 난 후 매점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산 뒤 운동장을 돌았다. 또 벤치에 앉아 친구들끼리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나누곤 했고 가끔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연애 상담을 하기 위해 빈 교실에 들어가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노력이다 싶을 정도로 매일 매시간 연락을 했고 영상통화를 하며 하루를 공유했다. 하루라도 연락을 안 하면 왜 연락을 안 하냐며 서로 서운해했다. 우리만의 이상한 우정공식이었다. 그 공식 아래 우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기꺼이 서로의 모든 일에 신경을 썼다. 그렇게 청춘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린 함께 걸어왔다.
누군가 그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머리론 알았으면서도 기대했다. 내가 너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길, 그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들은 다 서로이길. 이제야 너무나 큰 바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실망으로 만들어진 돌멩이는 바위 수준으로 커지고 커져 갑작스럽게 그 친구에게로 굴러간다. 예고 없이 굴려버린 돌멩이는 속수무책으로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 후로 우린 다시 대화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대학교 축제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서로 반가워했지만 인사를 못 했다. 단절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 아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때 인사를 건넸다면 소주 한 잔 하며 지난 일들을 툴툴 털어버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후회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미련이 남은 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이유 없이 떠오르고 곱씹게 된다. 결국 새해인사를 빌미 삼아 2년 만에 연락을 했고 그 친구는 너무나도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렇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2년 동안의 공백을 한 칸씩 채워나갔다.
가끔은 우리가 지나치게 타인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경향이 있진 않나 생각한다. 흔히 연인 사이에서 질투라고 하는 감정은 친구 사이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내가 그 친구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길 바라는 마음, 나 말고 다른 친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애매한 감정 같은 것. 건강한 인간관계에 필요한 첫 번째는 역설적이게도 '거리두기'인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턴 인간관계에 있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발자국만큼의 거리가 있는 관계'.
작은 한 발자국에 힘들었던 감정을 잠시 올려둔 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내 버리는 것. 적어도 나에게 있어 한 발자국은 관계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 발자국 안엔 내가 친구에게 느끼는 질투 또한 포함되어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까지 그 공간에 들어있기에 오래도록 연을 이어가고 싶은 관계에선 그만큼의 거리는 필수적이다. 그런 한 발자국도 없이 깊고 빠른 방식으로 내게 스며드는 사람이 가끔 무섭다. 멀어질까 봐, 또 내가 소중한 한 관계를 망쳐 버리게 될까 봐.
오늘도 나는 그렇게 한 발자국의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