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나는 음악이 갖는 힘을 믿는다. 단순히 음악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 외에도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채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줌에 있어 음악은 내 삶에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여기저기 나가 노래를 불렀고 피아노, 기타 등 악기 연주를 즐겨했다. 성악가나 가수는 아니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은 남들보다 뛰어났고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음악은 십중팔구 그 기억과 함께 했다.
산업 세계로 들어가 음악의 힘을 찾아본다면 더욱더 쉬울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광고들의 광고 음악, 매주 매시간 챙겨보는 인기 드라마의 오프닝송을 떠올릴 수 있겠다. 무엇을 광고하는 건지, 상품의 메리트가 무엇인지 전혀 관심 없지만 중독적인 커머셜 송(commercial song)을 듣고 있으면 광고 상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뿐더러 중독적인 멜로디에 빠져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춤이 없는 노래는 보편적이지만 노래 없는 춤은 극히 일부라는 것만 보아도 음악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을 통한 정보와 감정 전달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데, 문득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하니 음악의 중요성을 왜 이렇게 열심히 논하냐 싶을 수도 있겠다.
2022년 혼자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유럽은 소지품과 맞바꾼 낭만이라 할 정도로 소매치기의 천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여행 가기 전부터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소매치기 조심하라며 몇 번이나 이야길 했고 유럽을 다녀온 친구들은 더더욱 걱정하며 내가 하나라도 빼먹을까 봐 옆에서 챙겨줬다. 혼자 유럽이라는 낯선 대륙에, 그것도 소매치기가 들끓는 곳에 툭하고 떨어질 내가 많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칠칠맞지 못 한 성격이라 매번 하나씩 잃어버리는 탓에 친구들에게 자주 한 소리를 듣곤 하는데 소매치기까지 당하면 또 어떤 소리를 들을까 싶어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갔다. 휴대폰 손목 스트링, 캐리어용 자물쇠, 매고 다닐 가방에 쓸 자물쇠, 여권과 현금을 넣어 다닐 복대, 카메라 목 스트링, 휴대폰 분실 시 사용할 보조 휴대폰.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여행의 시작이었던 파리에서부터 나의 긴장은 시작되었다. 모든 감각은 내 휴대폰을 잡고 있는 오른손에 집중되어 있었고 시선은 가방을 메고 있는 왼쪽 어깨에 고정되어 있었다. 덕분인지 악명 높은 파리의 지하철도 무사히 통과했고, 에펠탑 앞 상인들이 북적북적한 거리도 통과. '이렇게만 다니면 아무 문제도 없겠는데?'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는 무릎 위에, 휴대폰은 손목에 걸어두고 밥을 먹었다. 사실 나에겐 여행 전부터 꿈꿔왔던 장면이 있는데, 그건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주변 소음을 무시하며 나만의 노래로 여행을 하는 것,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허나 이렇게 긴장의 연속인 상태에서 어떻게 무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길거리를 걸을 것인가.
프랑스, 스페인 두 나라를 그렇게 소매치기 방지에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그 덕에 한 번도 소매치기에 당한 적은 없었는데 세비야에서 딱 한 번. 방심하고 있을 때 소매치기범들이 내 휴대폰을 훔쳐갔다. 다행히 옆에서 보던 학생 무리가 알려준 덕에 뛰어가서 잡았지만 (이것도 대단하긴 하다) 그 이후로부터 광적으로 내 소지품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며 여행한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프랑스, 스페인에서 온 신경을 내 소지품에 쏟아 내다 포르투갈로 넘어가게 되면서 어느 정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포르투갈은 앞서 언급한 나라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가 있었다. 사람 간의 정이 돋보이는 곳. 개인보단 공동체가 더 우선시 되는 곳. 웃음이 많은 걸 넘어서 넘치던 곳. 내 두 번째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따뜻하고 편안했다. 여행 온 지 20일 만에 처음으로 가방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냈다. 꺼내면서도 이게 맞는 선택일까 싶었지만 여행 마지막까지 내 로망을 이루지 못하면 너무나도 슬플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마인드로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거닐었다.
처음으로 들은 음악은 당시 한참 빠져 들었던 ROLE MODEL의 'Who Hurt You'였다. 좋아했던 사람이 들어보라고 추천해 준 아티스트였는데 내가 더 빠져서 전곡을 다 찾아 듣게 되었고 리스본에선 'Who Hurt You'를 반복재생하며 사흘을 보냈다. 약간 우울한 느낌의 멜로디라 여행 내내 센치한 기분으로 모든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냥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할 때가 있으면 센치한 기분으로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 음악을 들으며 그런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포르투에서는 포르투 도착한 날 저녁에 발매되었던 Charlie Puth의 'I Don't Think That I Like Her'을 주야장천 들으며 여행을 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야경을 보며 길거리를 걸을 때도, 항상 찰리푸스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 늦은 저녁에는 아무도 없는 다리를 건너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을 때도 같이 노래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포르투갈을 마지막으로 유럽 여행을 마쳤을 때, 단 3일 동안 들었지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유럽여행은 로망을 실현하며 마무리 지어졌다.
여행이 끝난 후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다 우연히 켜진 라디오에서 찰리푸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시작과 동시에 나의 포르투 여행이 떠올랐다. 반주 부분을 들으면서 포르투갈 전통음식인 문어밥을 먹었던 순간이 떠올랐고, 후렴 부분을 들을 때면 가로등 반짝 거리는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모든 여행의 순간순간이 노래 반주에 맞게 하나둘씩 떠올랐다.
정유미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향수를 새로 산 후 여행 내내 그 향수만 뿌리고 다닌다고, 그러고 나면 시간이 지난 후 그 향수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이 인터뷰 내용이 회자되면서 ‘향수기억법’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향수로 여행지를 기억하게 되었다. 내겐 음악이 정유미 배우의 ‘향수’ 역할을 했다. ROLE MODEL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가 없어 포르투(찰리푸스) 만큼 자주 기억이 소환은 되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 길을 걷다 'Who Hurt You'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리스본에서 모든 순간을 이 노래와 함께 했고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노래였으니 말이다.
노래 없던 여행은 탐험을 하는 여행이었다면 노래가 감미된 여행은 즐기는 여행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포르투갈에서 음악을 들으며 다닌 기억은 약 한 달간의 유럽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었다. 음악이 있는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사람냄새가 난다는 것. 행복이라는 감정이 보다 크게 다가온다는 것. 감정에 솔직해질 용기를 준다는 것이 내가 여행을 하며 느낀 음악의 존재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블루투스 스피커로 '아침에 듣기 좋은 곡'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노래로 시작하는 하루는 전반적으로 행복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또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