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감정 표출이 어려운 사람

by 서미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 하던가,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의견에 무조건 순응하려 하는 과한 친절을 베푸는 경향이 있는 사람을.

한때 ‘내가 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에 응답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기보단 항상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부담스러웠나? 질리게 행동했나? 평소랑 문자 말투가 조금 다른데 화난 게 있나?라는 등 별 거 아닌 자그마한 일도 크게 부풀려 상대방의 진심을 왜곡했고 내 멋대로 판단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사니 점점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되는 기분이었다.


한창 공부에 몰두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손 놓았던 공부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그 덕에 나름 우등생 반열에 있던 학생으로 교수님들의 기대와 함께 동기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물어봤다. 고등학교 시절 느껴보지 못한 우등생의 기분을 느껴 뿌듯했었고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알려줬다.

어느 날은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친하지도 않던 선배가 말을 걸었다. 단순하게 나랑 친해지고 싶나? 생각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한 2분 대화 나눴을까, 그 선배는 나에게 저번 주 교수님이 내주신 전공 과제 답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 질문을 들으면서 속으론 언짢고 기분이 나빴지만 성격상 거절하지 못해 보여줬고 그 선배는 해맑게 웃으며 내 답안지를 들고 갔다. 물론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다 보여주고 나서 속이 상해 친한 언니한테 말했더니 너 진짜 호구라고, 그렇게 착하게만 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섬세하고 배려 잘하는 친절한 친구이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걸 다 퍼주는 바보 같은 친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타인에게 강단 있는 사람, 아닌 거엔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 누군가 주변에 나에 대해 물어봤을 때 ‘닮고 싶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길 원했다. 내게 호구같이 살지 말라고 조언했던 언니는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에둘러 거절하는 법이나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땐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언니의 성격을 닮고 싶어 매번 길어지는 나의 물음과 함께 우린 깊은 대화를 나눴다. 물론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진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강단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어느 정도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변화 하나만으로도 성격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게 됐으니 성공적인 도전이었다고 본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하나쯤은 모난 돌 같은 부분이 있을 거란 말에 공감한다. 완벽을 좇다간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모난 돌들을 둥그런 돌들 사이에 숨겨놓는다. 누군가가 나의 모난 돌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둥그런 돌들로 탑을 쌓아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둥그런 돌들을 차곡차곡 모아나가야 함을, 나의 둥그런 돌들을 상대방에게 쌓아줄 수 있어야 함을 인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