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의 나에게
회사 마치고 매주 상담하러 가느라 정신없지?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상담이 2년 넘게 이어지니 ‘언제까지 이어지나’ 조급함이 한 가득일거야. ‘부정적 감정이 들면 안 돼. 싸움은 안 좋은 거야.’라며 화를 참을 때마다 목에 울대가 눌리는 그 느낌은 좀 어때? 나아진 거 같아?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때마다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주하니 힘들만도 해.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아차리질 못해서 긍정인지 부정인지 나누는 것도 한참 걸렸잖아. 진이 다 빠지는 후폭풍을 매번 겪는데 후련함도 한두 번이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에 언제까지 매주 상담을 가야 하는지 미칠 지경인 거 당연해.
지금 너의 뇌에서 계속 맴도는 질문 있지? 이 상담의 결론이 뭐냐. 내 문제가 해결되는 거냐? 아니면 인간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해결될 수 없음을 알고 타협하며 그냥 사는 거냐? 에 대한 거 말이야. 5년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다행인 건 넌 상담은 졸업했어. 다만, 네가 말하는 ‘해결‘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어.
사실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건 없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말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상담의 결론이 문제를 껴안고서 타협하고 사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지금 너가 뚫고 지나가는 치열한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 중 하나야. 너가 어떤 인간인지, 어떤 프레임으로 지옥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는지, 너라는 인간을 저 바닥까지 가서 들춰보고 꺼내보는 게 제일 우선인 시간이 네게 온 거야.
갈등은 끝없이 파도처럼 밀려올 거야. 갈등 하나를 넘고 간신히 살만할 때쯤 다시 같은 문제로 터지고 또 터져. 한동안 물 속으로 계속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넌 그걸 제대로 직면하고 이겨내기 위해서 쌍욕도 소리쳐 내보고, 어느 날 사라져도 보고, 미친 듯이 심리학 책도 읽고, 편지도 써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너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집중하는 시기를 보낼 거야. 그러면서 너가 겪는 문제들이 어떤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돼.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해져. ‘아! 내가 또 긁혔구나.’ 하면서 화가 끓어 뇌를 치고 나가기 전에 ‘그래. 그럴 수 있지.’라며 식혀내는 여유가 생겨.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너의 감정을 잘 말하는 경험이 제법 쌓이게 돼. 너가 문제라 생각하는 면들은 그대로지만, 그 문제를 알아차리는 너의 반응이 달라지는거야. 어때? 이 정도면 문제가 해결된 걸까, 아닌걸까?
목울대를 누르는 시커먼 응어리를 다 떼어내는 걸 상상해 봐. 그 응어리들이 사라지고 나서, 너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을 떠올리면 어디야? 누가 곁에 있어? 상담 선생님이 건넨 이 질문이 네 인생을 바꾸게 돼. 그러니 곰곰이 잘 생각해 봐. 이 질문의 답을 가지고서, 넌 너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거야.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쉼 없이 써내려가던 순간에 느낀 감정을 잊지 말고 계속 써나가도록 해. 글쓰기는 또 다른 기회와 행복으로 너의 여러 안전지대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 거야. 걱정 말고 나를 믿고 끝까지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5년 전 나는 내가 유별나고 예민해서 뭐든 자책하고 불필요하게 애쓰는 사람이라며, 나를 갉아먹었던 거 같아. 너가 네 모습을 바꾸는게 너무 괴로운데 그래도 바꿔야만 된다고 생각했지? 지금의 나는 너가 꽤 많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안아주고 싶어. 너가 지금은 문제라 생각하는 높은 기대치와 뭐든 애쓰는 마음이 지금은 오히려 그런 너라서 좋아.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너의 특징이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 면들을 탓하지 않고, 좋게 잘 알아봐주는 사람들로 곁도 따뜻하게 채워져 있어. 그러니 목에 울대가 또 눌리고 힘들어도 괜찮아. 혼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