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어떤 인간이고 싶은가?
아이덴티티(identity) 나는 무엇이고 싶은가? 는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다.
자기 정체성은 현재 자기가 가진 특성이 과거와 미래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 번 해본다.
“대학 졸업한 너거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 내만큼은 못한다”
건축업으로 재산을 많이 모은 중학교 동기가 기분이 좋으면 늘어놓는 말이다. 그 친구와 여행을 가서 하동 섬진강 유역을 지나며 '참 모래가 아름답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가 “야! 저 모래 봐라. 부산 가서 팔면 한 루베 돈이 얼마인데!” 라며 돈으로 환산하여 자연의 가치를 말하는 친구를 힐긋 다시 한번 보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우리 지금의 지위와 처지를 바꿀래?' 하면 못 사는 내가 '응. 그래! 바꾸자'라고 답할까? 몇 번을 생각해 봤다.
서로 갖지 못한 것이 있다. 그 서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가치가 어떻게 환산될지는 각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이 처지를 바꾸자 할 때 '그래. 우리 완전히 맞바꾸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의 자신은 스스로의 가치 판단과 노력으로 만들어온 결과물이다. 나보다 좋은 조건을 부분적으로 가진 친구가 바꾸자고 할 때 '그래'하고 답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고 자신의 가치를 없애버리는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쉽게 상대방의 제의에 동의할 사람은 실제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상담을 한번 받아 보고 싶다.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추측을 넘어 '너는 그런 인간'이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한번 받아 보고 싶다. 특히 심리적인 바탕에 깔린 내 내면의 무의식을 한번 알고 싶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다시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서 네가 원하는 환경이나 희망을 허용해 줄 테니 되고 싶은 사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인간이고 싶을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껍데기를 벗고 정신적인 면에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러워 존경하여, 되어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사람의 이름을 되새김해 보니, 떠오르는 사람들이 대개 예술 쪽이다. 배고픔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배가 고프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집을 고쳐서 사는 것보다는 새로 짓는 것이 더 산뜻하고 수월하다! 사람도 그러할까? 다른 사람에게서 이상형을 찾기보다는 나 자신을 좀 더 고쳐서 발전된 자기 모습을 상정하고 싶다. 왜냐고? 가장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에 맞게, 내 삶은 가장 낮은 스펙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살아온 과정이다. 나는 심리, 경제, 체력, 가정, 어느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그냥 쉬임 없이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현실에서 크게 타인에게 부러운 것도 없다. 아마 늙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들 것이라고 본다. 이 나이에 통으로 누군가로 되고 싶다는 것은 맞지 않다. 여기저기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면 일면을 따와서 나를 짜깁기해본다. 마치 인간을 짜깁기하여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처럼 말이다.
1,500세대 전체 아파트 운영을 맡아서 책임을 져 보니 '나는 관리자의 면모를 갖춘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늘 노동자인 직원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니, 아파트 주민의 이익을 올려 주어야 하는 지위를 맡는 데는 맞지 않는 인간이라고 판단했다. 재임이 가능하지만 한 번으로 내 역할을 마무리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 힘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재력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니 재력으로는 남을 도와줄 수 없지만 나의 재능으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 한다. 홍세화 작가가 모두가 점 하나, 장교가 되려는 세상에서 그는 늘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라고 했다.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 역할을 하려 했다. 그가 인근 고등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는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 논문을 읽는 것처럼 논리 정연하고 바른 결론을 내린다.
전태일 열사가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어린 여공들을 도와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진작 자신은 먼 길을 걸어서 퇴근할 때 그의 모습을 나는 재림 예수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군사 정권하에서 문귀동의 성고문으로 권인숙 양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조영래 변호사는 자신의 일처럼 온갖 노력을 쏟아 결국은 국가에 이겨 세상이 바뀌게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변론하여 권리를 회복시켜 준 인권변호사로 유명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를 초청하여 자기 자리에 “어머니! 앉아보세요” 하며 전태일 대신 아들 역할을 자처한 그의 품성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요즘 알게 된 김민기의 일생을 보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나와 같은 동년배이지만 능력은 쫓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늘 힘든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였다. 자신의 재리를 챙기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늘 뒤에 서서 더 힘든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진주 어른 김장하도 근래 존경하는 분이다. 한약사를 하며 모은 재력을 사회를 위해 평생 기부로 일관한 그의 삶도 성인이다.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은 늘 뒤편에 서서 나서지도 않는 겸손함으로 일생을 살아왔으니 놀랍다. 정권의 폭력적인 칼날로 전국에서 1,500명의 교사들이 잘릴 때도 자기 재단에서는 한 명의 교사도 내보낼 수 없다고 한 그의 말이 정말 고마웠다.
이런 사람들의 능력을 나도 한번 가져 봤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그이 능력과 기회와 순간을 나도 한번 맞이해 봤으면 하고 부러워한다. 민주화 유공자 명단에 보면 시인 김남주가 올려져 있다. 그의 치열한 투쟁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럽다.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믿고 행동해 나가는 적극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노회찬 의원이 정치 자금 사 천만 원 때문에 동료들에게 해가 될까 봐 목숨을 끊었다. 그 수천 배의 공금을 자기 배속으로 집어넣어도 파렴치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작은 수치심에도 견디지 못한다. 그의 부음을 듣고 빈소에서 아무 연고도 없으면서 엎드려 울었다. 난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늘 고마워했다. 가지고 있는 스펙으로 기득권 무리에 서면 일생의 출세는 충분히 보장될 텐데 스스로 무지렁이들의 무리와 함께하여 자신이 쉽게 획득할 영달을 모두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이정희나 조국을 좋아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벗이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좋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찍 이 세상을 뜰까? 10년이 지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한 말 “야! 우리 같은 천 것들은 잘 죽지도 않는다.”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친구가 대답 삼아 빙그레 웃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부분 일부분을 조금씩 가진 업종이 교사이다. 언급한 좋은 사람들처럼 되기는 어렵지만 그들 삶의 일부분을 조금씩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업종으로는 교직이 안성맞춤이다. 그런 면에서 더 노력하고 힘든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교사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해본다. 해직된 교사들은 거의 현장에 복귀했다. 다른 직종에서는 찾을 수 없는 교직만의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풀냄새 풀풀 나는 젊은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한 지난 시간이 그립다. 늘 아이들이 찾는 좋은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교사가 역시 지금 생각해도 가장 되고 싶은 나의 바람이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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