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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대 내 삶을 피보팅하다

#퇴직 #오십대 #피보팅 #쇼생크 탈출 #브룩스 #새술 새부대에 담기

by 미스틱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r can set you free. (두려움은 당신을 죄수로 가두지만,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서 -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주인공인 앤디(팀 로빈스)와 레드(모건 프리먼) 이외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조연들이 꽤 많았다. 그중 도서관 사서였던 브룩스(故제임스 위트모어)는 50년 복역 끝에 가석방되어 자유를 얻지만 바깥세상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숙소에서 목을 매달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야 만다.


브룩스는 가석방되기 전 동료 재소자 한 명을 인질로 삼아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이려는 돌발 행동을 했다. 평소 온순하고 조용했던 그였기에 그 당시 아무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50년 간 감옥생활에 길들여진 그에게 내려진 가석방 결정은 어쩌면 사형 선고만큼이나 잔혹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감옥의 동료 재소자들은 가족과 마찬가지였고, 도서관 사서 자리는 천직과도 같았다. 감옥생활은 그의 삶의 전부였고, 감옥을 떠나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반면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40년 이상을 복역 중인 레드(모건 프리먼) 또한 가석방된 후 브룩스처럼 초기에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그 또한 40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고, 허락받지 않고는 오줌조차 눌 수 없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생면부지의 바깥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던 레드는 다시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붙드는 것은 절친이었던 앤디(팀 로빈스)와의 약속이었다. 그는 20년간 감옥생활에서 절친이었던 앤디의 탈출을 보면서 자유가 왜 소중한지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햇살 좋은 휴일 앤디가 말했던 벅스톤으로 길을 떠난다.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서 앤디가 묻어 둔 편지를 꺼내서 읽는다.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좋은 것을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브룩스는 자살하고, 레드는 희망을 찾아 떠난다.



브룩스 vs 레드

사실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자유'이다. 자유를 누리는 것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용되며, 또한 그에 걸맞은 책임이 요구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에서 자유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로 구분하는데 우리는 단순히 '구속으로부터의 회피'라는 '소극적 자유'가 아닌 스스로가 추구하는 '그 무엇을 향한 자유' 즉, '적극적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되며, 책임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수반된다. 그러므로 너무 과도한 자유를 주고 책임을 요구하면 피로감을 유발하게 된다. 저자는 자유를 위한 비용이나 책임을 감당할 역량이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유로부터 도피해 기꺼이 굴종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만약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레드처럼 예정된 형기보다 일찍 가석방되어 막상 바깥세상에 출소를 했지만 이전의 당당했던 호기(好氣)는 겨우 두 달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28년간의 단절된 수감 생활의 습관은 지독한 족쇄가 되어 평화로워야 할 나의 일상을 여전히 옥죄고 있었다. 어쩌면 '소극적 자유'에서 비롯된 동기가 적극적 자유를 향한 자발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인 듯싶었다.


오십 대 퇴직 이후 만약 운이 좋다면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지식, 노하우가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지식, 노하우는 초기화가 되어 버리고, 이후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양상이 펼쳐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퇴직 이전의 삶이 속도에 치중되었다면 퇴직 이후의 삶은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나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자신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인지도 점검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던 퇴직 이후의 삶은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임으로써 이전과 다른 삶의 양상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나는 자발적 자유를 향한 '오십 대 피보팅(pivoting) 전략'을 수립하기로 했다. 원래 피봇(pivot)은 스포츠에서 몸의 중심축을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옮기는 것을 일컫는 용어지만 여기에서는 퇴직 이후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려는 위기 속 전환 시도를 말한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와 미켈란젤로


핵심 역량을 피봇팅하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90세 때였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아베마리아'를 85세에 작곡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해 82세에 마쳤다고 한다. 현대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미국의 화가 리버맨은 사업에서 은퇴한 후 소일하던 중 어떤 여성의 충고를 듣고 10주간 그림 공부를 한 후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 나이가 81세 때였다. 그는 101세에 22번째 개인전을 가졌다고 한다.


어느 노교수가 60대 초반에 자랑스럽게 은퇴해 육십 이후의 인생을 마치 덤으로 살았지만 90세가 되었을 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난 30년 간의 삶이 한없이 아깝고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전은 뭔가를 새롭게 도전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첫 직업이 인생 전반전을 좌우하듯이 퇴직 후에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남은 인생 후반전을 결정할 수가 있다. 그러니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자신이 피보팅할 개인의 핵심 역량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핵심 역량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핵심 능력'을 말하며, 타인과 차별화되고 경쟁우위의 역량을 말한다. 핵심 역량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타고난 자질이나 강점, 성격, 관심사, 학습 능력, 지식이나 기술, 경험이나 노하우, 취미 영역 등 개인의 모든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며, 그중 어떤 것이 개인의 핵심 역량인지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외국어 능통, 조직 리더 경험, 학위, 다양한 직무 경험(기획/분석 능력, 영업망 구축, 프로젝트 기획/완수), 취미 영역(악기/운동/낚시/DIY) 등이 핵심 역량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 역량을 확인했다면 그것을 어떻게 심화시키거나 체계화시킬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며, 펼쳐질 새로운 삶과의 연결점을 찾도록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2020년 5월 한국 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한국 직업 사전 통합본 제5판>을 보면 대한민국엔 16,891개의 직업이 있으며, 2012년에 비해 5,236개가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30,654개, 일본은 17,209개로 선진국이고 산업이 발달할수록 직업의 수는 증가한다고 한다. 이 중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직업은 100여 개 직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 인생의 후반전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핵심 역량을 펼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생각보다 직업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을 위한 환경 설정을 해야 한다.


새로운 삶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베른 하르트 케겔이 지은 <후생 유전학>을 보면 동일한 유전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의 발현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이는 유전자의 영향이 아닌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즉 타고난 유전자는 변하지 않지만 그 유전자 중 어떤 유전자를 활성화시킬 것인지는 환경, 습관, 경험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생 후반전의 삶을 피보팅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구축해야만 한다. 편하다고 기존 사람들과 계속 만나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성장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연령 계층과도 만나야 하고,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분야에서 자신을 이끌어 줄 멘토나 귀인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기존의 인맥과 연줄을 활용해 찾아도 되고 아니면 돈을 내고 유료 멤버십에 가입을 해도 되니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더해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가 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임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정보를 교류한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은 공통 관심사를 위해 기꺼이 모인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끼리끼리 문화에 동참해야 한다. 인생의 운명과 행복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이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그간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거나 형식적인 만남을 지속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무소유의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에서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야 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설픈 인연으로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하며, 그래야 좋은 일로 결심을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난 퇴직 후엔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었다. 이제부터라도 실천해야 할 때다.



전략적 자산 배분에 대한 피보팅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이 있다.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미래에 일어날 재난을 미리 준비하자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공격적인 투자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만회할 시간이 있지만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한 시점에는 지키는 투자로 선회해야 한다. 퇴직을 하더라도 퇴직 전의 현금흐름에 준하는 소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금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퇴직 후 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갈등은 퇴직 이전 수준의 소비를 줄이는데서 일어난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퇴직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부부간 협의할수록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살고 있는 주거의 환경 변화 없이 지출을 줄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집의 규모를 줄이거나 관리비가 없는 단독주택으로 옮김으로써 주거의 환경 변화를 꾀하고, 남은 자금으로 현금흐름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투자 측면에서는 자산을 잘 지켜가면서 자산을 증식시키는 스펙트럼을 찾아야 한다. 훨씬 안전적인 자산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내 성향과도 맞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삶과 일과 투자가 하나의 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삼원일치가 될 때 비로소 투자가 성공하고 성장하게 된다.




공자는 논어 자로 편에 '子夏為莒父宰,問政. 子曰, “無欲速,無見小利. 欲速則不達,見小利則大事不成.(자하가 거보의 읍재가 되어 정치를 물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마라. 급히 하려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자칫 서두르게 되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전과 달리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기간을 가져야만 한다. 얼마 전 절친이 퇴직한 나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친구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내가 볼 때 넌 2년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인생을 관조하면 좋겠다. 만약 네가 지금 조금의 투자자산이 있었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많은 단기 투자 손실을 봤을 거다. 어쩌면 천우신조라고 생각해라. 기다리면 때가 오는 법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난 잠시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를 곱씹어 받아들였다. 그 친구는 나와 달리 인생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다 겪은 친구여서 어느 정도 인생의 심오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소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고 충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아는 길도 물어가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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