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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Feb 26. 2021

고독의 힘, 아모르파티(운명애)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예전 지방도시 유통업 점장으로 근무할 때, 아침 개점을 하면 항상 인근 동네의 할머니 한 분이 제일 먼저 들어오셔서 고객서비스센터 의자에 앉아 계셨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서 오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직원을 통해 들은 얘기는 '할머니는 오전 내내 자리에 앉으셔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사람 구경을 하면서 위로를 받으신 것이다.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면 여기에 와서 사람 구경을 하실까? 생각을 하니 왠지 짠한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군중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산다. 나 또한 그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 파묻혀 생활했다. 하지만 시간의 끝은 항상 혼자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외로움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나는 점점 더 외로움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 때면 혼자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면서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냈다. 


누군가 곁에 있어서 더 외로운 적은 없는가? 모두들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구나 이런 공허한 감정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향락적인 것들을 탐색하고, 시간들을 소모한다. 이런 내게 《고독의 힘》이라는 책은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외로움''고독'과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다. 낯선 환경에 혼자서 적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나 말고 다른 것에 의존해야 편안하고, 그것이 없을 때는 불안을 느끼는 감정 상태이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든 현재든 어떤 시점의 삶에 매여 있기 깨문이다. 하지만 고독은 나 혼자 존재할 때 느껴지는 감정으로 의존적이기보다는 독립적인 감정이다.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로 외부와의 단절을 감행해야 한다. 단절이 되어야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런 성찰이 새로운 것들과의 연결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고, 또 고독해야만 한다'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뒤얽힌 삶에서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은 꼭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 하루에 한 번씩은 잠시라도 삶을 돌아보고,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멈추게 해서 잠깐 쉬게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은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삶의 무게에 지친 자신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절실하지 않은가?




본인을 화가로 불러달라는 김정운 작가는 강의에서 특히 요즘 남자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공간의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데 아파트 문화인 지금은 그런 공간이 전혀 없다. 유일하게 주어진 공간은 자동차 안이다. 운전할 때만 주어지는 한정된 시간에서 그 공간의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는 주택을 지으면 '남자들을 위한 동굴(Man's cave)'을 별채로 짓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칵테일 바를 만들고, TV와 소파를 설치해 스포츠 게임을 즐기며, 심지어 당구대를 설치해 친구들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공간도 고독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정말 외로움과 고독이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일까? 막상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자신만의 성찰도, 그리고 자신을 위한 위로와 응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먹는 것에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여전히 혼술, 혼밥은 낯설고, 고독의 시간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고독은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고 갈 때 나오는 터널과 같다고 말한다. 터널만 지나면 목적지에 훨씬 빨리 도착할 것이고 어둠은 곧 밝은 세상과 만나는 연결점이 되는데 고독은 우리가 더 빨리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당신이 극도로 외롭고 고독하다면 그건 오히려 미래의 풍요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삶은 고독이라는 어둠 속에서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독이 있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주저앉기도 했지만 일으켜 세운 것도 바로 고독이었다. 고독이 있기에 친구와의 만남도 더 소중해졌고, 가족들과의 시간도 소중해졌다. 결국 고독은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고, 그것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고독은 우리가 찾아가야 할 길이고, 행복한 침묵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고요한 상태에서 우리는 영적 세계를 만나고, 삶의 철학들을 떠올리게 된다. 혼자 있을 때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된다. 익숙한 것과 단절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당신의 미래도 바뀐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혼자만의 시간은 집중과 몰입의 시간이다. 누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그때가 오히려 인생의 승부수를 걸어야 할 때이다.


유명한 모든 철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인들은 모두 홀로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들은 한겨울 눈 덮인 황량한 겨울의 풍경과 같은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과 직면하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고, 고독에 익숙해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고독해야 고독하지 않을 수 있고, 고독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서 고독하게 수련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이 없이는 절대로 숙성과 성숙의 단계로 돌입할 수 없다. 고독은 삶의 당도를 높이는 영양분이기 때문이다.

 



고독이 깊어지면 병이 되지만 잘 견디고 활용하면 작품이 된다. 예술가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은 참 중요하다. 가장 불우한 인생을 살 다 간 가장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일생동안 절망과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보냈기 때문에 내면의 고독의 힘으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고독과 조우하더라도 한숨 쉬지 마라. 발전의 시간이 온 것이다. 고독은 진정한 자기 치유이며 성공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결국 인생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믿고 그로부터 희망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대병인 스트레스는 고독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 SNS, 인스타그램 등을 끊고 단순하게 정리해보니 나를 불안하고 힘들게 했던 생각과 생활 등에서 많이 벗어났다. 고슴도치가 서로의 가시가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듯이 인간관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거리가 있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는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고독을 견디는 가장 큰 힘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고독은 치유와 명상의 시간이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는 것도 좋고, 글을 쓰는 것도 좋다. 하루에 일정 시간은 반드시 자신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그저 견뎌내는 것이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하고, 진정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는 말이다. 즐거움과 분노의 감정은 우리를 흥분해서 행동하게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하고 정적이게 하지만 결국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외로워서 힘들 때도 있지만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를 꾸역 구역 하게  된다. 그래서 외로움과 고독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다.


이런 극도의 외로움과 고독을 잘 승화시킨 위인들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평생 동안 병고와 질병에 시달렸다. 읽는 일, 쓰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는 극강의 고통이 있는 필연적인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심지어 사랑했다고 한다. 자기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이 병 속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다고도 했다. 이것이 바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운명애(運命愛)'를 말한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방식의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아픔도, 질병도, 고독도, 외로움도 모두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운명애다.




또 다른 운명애자인 마스시타 고노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데 93세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더니 첫째는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고, 둘째는 허약하게 태어난 것이고, 셋째는 못 배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는 습관을 익혔고, 허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지런히 몸을 단련하여 나중에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기 때문에 상대가 초등학생이라도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려고 한 덕분에 지금은 많은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고 한다. 정말 진정한 '운명애자'인 것 같다.


등산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나 홀로 등산을 즐긴다. 자기만의 페이스와 자기만의 등산을 즐기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혼자서 음미해야 한다. 온전히 먹는 맛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주변에 소음이 없어야 한다. 정독하면서 느끼는 유익한 내용들이 짜릿하게 뇌를 자극한다. 낚시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세월을 던지고 인생을 낚는다. 요즘은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전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느끼고만 있던 삶의 의미 있는 콘텐츠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살아왔던 인생을 정리한다. 이런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면 외로울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삶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인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고 만들어 가야 한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는 김정운 교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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