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영계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건강하게 늙어 죽을 것이다.
유족 업무를 하다 보면 숱한 죽음을 볼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하고, 음식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갑작스러운 추위나 더위에 쓰러지고, 무거운 공장기계에 깔리는 등 죽음은 늘 우리 곁을 맴돈다. 얼마 전 제주항공의 여객기 사고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사고로 인해 하나뿐인 생명들을 잃었고 소중한 가족들을 빼앗겼다. 그 사고가 나기 며칠 전 내 아이들도 같은 항공사 비행기로 사이판을 다녀왔다. 참사는 내 아이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
겨울방학과 연말연시로 들떴던 마음이 일시에 사라진 분위기다. 우리는 도대체 재해란 걸 얼마나 당해야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일까. 일상의 위험은 이전부터 반복되고 누적되었다가 결국 폭발했다. 그런 불행한 일은 갑자기 발생되었던 게 아니다. 충분히 사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탓이다. 그러기에 위험의 확률을 비껴간 삶을 산다는 건, 단지 우리가 억세게 운이 좋았다는 것뿐이다. 언제까지 운에 일상을 맡길 것인가.
현대 의학기술은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을 늦출 수 있다. 다양한 약물처방과 진료행위 덕분에 인간 수명은 100세를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이고 올해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5%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맞을 예정이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가는 추세이나 닭의 수명은 겨우 35일이면 끝난다. 그건 전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당신은 과연 성체로 자란 어른 닭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들면서 닭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그 옛날 마당을 뛰어다니던 닭의 모습은 도시에선 낯선 풍경이다. 더 이상 닭의 활발함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도축되어 하얗게 씻겨져 포장된 민둥 닭만 만날 수 있다.
노화 예방을 위해선 일반 성인보다 약 30% 이상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65세 노령인구의 절반 이상이 권장량보다 적게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영향 불균형이 노화를 더 촉진하게 된다. 단백질은 신체의 기능 중 근육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같은 중량이라도 닭이 소나 돼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 단백질 식품 중 단백질 유지와 성장에 사용되는 비율인 생물가는 달걀과 우유, 소고기, 치즈 순으로 높다고 한다. 따라서 닭과 달걀은 고령자 건강을 위한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고령이 될수록 육류의 소비 지출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화가 많이 진척될수록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해야 하지만 거꾸로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노인사회가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고령화에 맞는 업무량 조절, 정년시기 연정, 맞춤형 영양식단 등이 절실하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식품영양과 관련된 컨설턴트, 상담사, 조리사 등으로 창업이나 재취업을 준비한다. 이 외에도 일본은 24시간 편의점 내에 간병센터나 조제약국을 두거나 차에 탄 채로 처방약을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약국이 있는가 하면, 젊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스타벅스가 치매카페를 별도로 운영한다
아무튼,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먹고 사느냐가 건강한 삶을 위해 중요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성장을 위해 균형된 영양소가 필요하듯,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건강한 식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옷이나 물건 등을 나누고 간단히 필요한 것을 위주로 정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그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체 에너지의 방전을 막고 지속적인 체력을 유지하는 게 하나의 전략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 박경리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시원하다고 한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성찰일 테다.
사실 누구나 늙기 때문에 고령화 문제보다 저출생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노인 인구수가 증가하는 동안 젊은 세대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경쟁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면서 일본은 초등학교가 노인학교로 바뀌고 있다. 곧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변할 것이다.
오후에 바로 옆에 있는 직장 동료랑 아이들의 장래에 관해 이야길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녀의 딸이 나중에 커서 직장을 구하거나 집을 살 때는 지금 우리 세대보다 얼마나 더 힘들지를 생각하니 걱정이라고 했다. 몇 년 전 대기업을 그만두고 호주로 나가 우연히 글을 써서 작가가 된 친구처럼 좀 덜 벌어도 자신과 가족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경쟁을 부추기고 일등만 인정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아쉬웠다. 경쟁에서 밀린 누군가는 실패자나 낙오자로 분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줄고 노인이 늘어나도 영계들은 공장식 축사에서 필요 이상 생산될 것이다. 나중에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닭과 달걀의 생산이 감소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지금보다 닭의 생은 더 일찍 마감할 것 같다. 인간의 식욕과 식탐이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가는 까닭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깊이는 알 수 없다. 커다란 구멍이 닭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닭들이 삶을 희생한 대가로 인간은 건강을 지키고 수명을 연장시켰다. 인간은 점점 강해진 반면 닭은 취약해진 것이다.
과연 오래 사는 것만으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세상에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질문은 우리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이제껏 인류에게 빛이었고 진리였던 닭에게 말이다.
나는 죽어서 닭의 먹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먹어치운 닭이 나의 피와 살이 되었으므로, 내가 죽더라도 그에게 가장 가까운 물질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나는 죽어서 화장된 후 옥수수밭에 뿌려져야 한다. 나를 영양분 삼아 옥수수는 높이 자라고, 나의 아이들은 잘 익은 옥수수를 먹을 것이며, 남은 옥수수는 다시 가루로 빠서 양계장 닭들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나를 먹고 건강하게 살길 바랄 뿐이다.
(참고자료)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인의 식품소비 트렌드 분석> (2007.12)
* 김웅출 <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 헬스조선 <고령자, 단백질 30% 더 필요...> (2019.3. 26. 기사)
*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