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듣고 싶은 소리들이 있다. 토닥토닥 야채 다듬는 소리, 언뜻언뜻그릇부딪히는 소리, 잘름잘름 찌개 끓는소리, 그 소리들에선감칠맛이 났다. 키친 소리들은 엄마 몰래 주방을 빠져나와 바닥을 구르던 나를 발견하고는 내 귓속을 간질였다. 아득해진 기분으로 나는 단잠에 빠졌고,밥 먹어야지,라는말에 문뜩 정신을차리고 나면따뜻한 밥상이 차려졌다. 엄마는 내가 무슨 소리를 좋아하는지, 무슨 냄새에 침을 꼴깍 삼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분주하고 아늑한 부엌을 나는 '치킨'이라 불렀고, 그때마다 엄마는 '키친'으로 정정해 주셨다. 치킨과 키친은 서로 다른 이름이라 잘못 부르면 싫어한다고하면서. 그래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선 비슷하게 생긴 말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 같았다.
지금은 체어, 스툴, 소파, 벤치를 구별할 줄 안다. 그러나 맨 처음 영어를 배울 때엔 그것들이 모두 다 같은 줄만 알았다. 이것도 의자, 저것도 의자인데 낱말카드는 같은 의자들을 배열해 놓고선 다른 것처럼 군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굳이 필요한지 몰랐다. 그래서 구분된 낱말의 쓰임새가 다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카드마다 표시된 그림과알파벳을기억하는 건 숫제 상상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하나의 물건을 두고도 다르게 인지하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나나를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에게 바나나가 이렇게 노랗고 달콤하고, 그런 바나나를 원숭이가좋아한다고이야기해서 납득할 수 있을까. 여행자가 가상세계를 체험한 직후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는 것처럼, 나는 듣보잡인 물건들의 낱말들을 암기했다.햄버거를 TV에서 봤지만 무슨 맛인지 잘 모르던 시절, 새롭게 등장한롯데리아나 맥도널드는놀랍고 신기했다.
그 시절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묽은 밀가루로 반죽되어 튀겨진 조각닭이었다. 켄터키주가 북아메리카의 어느 지역인지도 모르면서, 켄터키를 발음할 때면 초원이 펼쳐진 시골 풍경과 낡고 오래된 통나무 집을 연상했다. 정작 통나무로 지어진 집을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치킨'이란 게 새끼 닭을 뜻한다는 걸 중학교 영어시간에서 알았다. 그전까지 치킨은 닭집에서 막 잡아 나온 튀김닭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부화한 지 30일 정도 된 영계를 쓰기 때문에 치킨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옛날 치킨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식감도 질겼다. 그것은 치킨이라기보다 다 자란 콕(Cock)이나 헨(Hen)으로 불렀어야 했을 것이다.KFC가 들어오기 전인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칭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성행했다. 수입상은 닭을 튀기는 압력기름솥을 팔았고, 닭집은 밀가루와 약간의 양념을 버물려 튀긴 닭을 팔았다. 당시 닭 조각당 가격이 6백 원이고, 닭 한 마리를 보통 6조각으로 나눴으니 치킨값이삼천 원 정도였다. 라면 한 봉지에 백 원, 짜장면 한 그릇에 오백 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너무 비싸서사 먹기 힘들었다.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모든 지각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그리고 고통이 있어야 기쁘거나 슬픈 감정 등을 느낄 수 있으니고통은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사람은 태어나서 울고 또 죽으면서 우는 까닭에 삶은 점철된 고통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고통을 참는 연습이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연습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도 말이다.누군갈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틋한 심정을 지키기 위해선용서, 화해, 이해, 인내라는낱말들을 계속해서 마음에새기고 읽어야 한다는 걸 나는 새삼 깨닫는다.
작년에막내가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고 말까지 느린 병아리 같은 아이가 학교생활이 힘들까 봐걱정했지만, 아이는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등굣길에서 만난 친구와 교문까지 뛰어가는 모습도좋았다.학구열은 별로 없는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누구든 부족한 점이 있을 테고 그런 건차차배워가면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무사히 1학년을 마쳤다.그리고 2학년이 되자매주 받아쓰기 시험을치렀다. 첫 시험에서 아이는 3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다. 나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태연하게 구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받아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를 재촉해공부를 시켰다. 40점, 50점... 조금씩 맞춘 개수가 늘어나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의전화가왔다.선생님은사뭇 진지하게 난독증이 의심된다며검사를 권했다. 자신은 뒤늦게 아들이 난독증인 걸 알게 되어후회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급하게 예약을 하고선 치료센터에서 진단검사를 받았다.결과는 우려했던 대로였다. 센터에서는아이의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빨리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막내는 유난히 말이 느린 탓에 한글을 익히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발음이 명료하지 않다며아이를 타박했고, 받아쓰기가 왜 이 모양이냐며 산만한 태도를 꾸짖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는잘 되지 않아도 최선이란 걸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아이를 나무랐던 것이다.
1996년 프링글 모건은 한 아이가 낱말의 소리나 글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 발견한다. 같은 반 아이들이 치켜세울 정도로 똑똑한 아이인데도 그랬다.읽고 쓸 줄 알아도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난독증이다. 켄터키 의과대학 박사인 카사노바(Manuel Casanova)는 대뇌피질에 있는 뉴런 집합체 사이에 공간이 꽤 벌어진 게 원인이라 했다. 이는 마치 뇌에 자리 잡은 회로들이 장거리망을 구축해, 인식을 위한 연산이나 작동에 시간이 걸려 생기는 일들이다. 그래서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책을 읽고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금세 까먹고 빨리 읽는 것도 힘들다. 다만, 본문의 세부적인 걸 잊었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은 뛰어나다고 한다.
'치킨'과 '키친'도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지금 키친에서 치킨을 에어 프라이어로 굽는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키친 소리를 내 아이를 위해만들면서, 이젠 더 이상 그런 낱말들을 헷갈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치킨과 키친의 구분에만 몰두했었던 모양이다. 치킨을 둘러싼 수많은 풍경들이 있었는데도 나는 보지 못했다. 치킨이라는 본문에 너무나 골똘한 나머지 전체적인 맥락을 잃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의 난독을 미처 몰랐던 것처럼 정작 중요한풍경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라도 막내가 세상을 보고 읽고 듣고 말하는 방식에 맞춰살아야겠다. 치킨과 키친 사이에있었을 무수한점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아이와 함께 선을 긋고 큰 그림을 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