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어느 날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데 오른쪽 눈 오른쪽에 무슨 점 하나가 왔다 갔다 했다.
혹 안경에 뭐가 묻었나 벗고 닦아 보아도 마찬가지였고,
혹 눈썹에 뭐가 붙었나 확인을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를 끄고 방에 들어 와 TV를 보는데도 화면 오른쪽에서 보이는 것이었다.
날파리 같기도 하고, 작은 벌레 모양이기도 하고 또는 실오라기나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 같아 아주 신경이 쓰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에도 가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아리송했다.
그렇다고 어디가 아프거나 하지도 않았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여 선생님이 뇌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수술이 잘 되어 완쾌한 다음 만나 물어 보았다.
"어떻게 수술을 하게 됐어요?"
"아니, 그냥 있는데요, 눈 앞에 벌 같은 게 막 날아다녔어요,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가 보았더니 서울 큰 병원에 가라고 하잖아요"
"아프지는 않았구요?"
"아뇨, 가끔씩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요"
그런데 난 아프진 않으니 그 선생님과 같은 병은 아닌 것 같고.
목요일은 교대 동기생들과 제주 올래길을 걷는 날이다.
그냥 무심코 옆에 있는 친구에게 증상을 말했다.
“그거 비문이야!”
대뜸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문? 그게 무언데?”
“눈 앞에서 모기나 파리 같은 게 날아다니지?”
“응, 그래”
“그거 비문이라는 건데 약도 없고 치료도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돼?”
“그냥 견디는 수밖에”
그러자 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말을 받았다.
“우리 집 사람도 그런 적 있어, 우리 집 사람은 파리채 들고 쫓아 다니기 까지 했어”
그러자 처음의 친구가 다시 말을 받았다.
“난 오래 전에 강의 듣다가 갑자기 화이트 보드에 뭐가 막 날아다녀, 강의 끝나고 병원에 들렀는데 의사가 그렇게 말 하던데”
이 말을 들으니 약간 안심이 되기는 했다.
“그래서 그 이후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죽는 병은 아니니까 그냥 견디지”
“정말 아무 일 없었어?”
“신경 안 쓰면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나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는 일이다.
점심 끝나고 집으로 오다 동네에서 안과가 보이길래 들렀다.
안과에서는 으레 시력검사와 동공검사를 했다.
시력 검사를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왜 간호사가 꼭 지시봉으로 가리키는지.
그냥 어디까지 보이는지 물어 보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
간호사가 양쪽 다 0.9라고 했다.
그거 밖에 안 되냐고 했더니 이 정도면 아주 좋은 거란다.
동공검사까지 마치고 의사 선생님에게 갔더니 친구들이 말하는 것과 똑 같았다.
“이거 비문이라는 건데요. 나이가 들어가면 생기는 노화현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이건 치료도 안 되고 약도 없으니까 그냥 견디세요”
내가 걱정이 되어 다시 물어 보았다.
“혹 뇌에 이상이 있어 생기는 건 아니죠?”
“뇌에 이상이 있어 생긴다면 아마 지금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을 느낄 겁니다. 시력이나 동공은 아주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잊고 지내십시오. 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눈 감을 때 전깃불이 번쩍거리기도 하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집에 돌아 오면서 ‘비문? 비문?’ 하면서 그 뜻을 생각해 보았다.
만약 非蚊이면 ‘모기 같으나 모기는 아닌 것’이 되고, 飛蚊이면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인데 어느 것이 맞을까 궁금했다.
집에 와 컴퓨터로 검색해보니 飛蚊이 맞고 그 뜻은 우리 말로는 ‘날파리증’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참 나이가 들어가니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갑자기 박경리 선생님의 말씀이 떠 올랐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이 아니라 늙어가니 이리 이상한 일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