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려고 무를 뽑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씨를 뿌릴 때부터 얻고 싶은 것은 무가 아니라 무청이었다. 그래서 자라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싹이 나오면 마냥 신기했고 잘 자라주는 것이 고마워서 화초 보듯 즐겼다. 내 행동을 옆 밭에서 농사짓는 할머니는 무척 못마땅해 하셨다. 만나면 쓴 소리다.
씨를 뿌릴 때부터 지켜봤는데 성의가 없다는 것이다. 소중한 씨앗을 막 뿌려서 씨앗을 낭비했고, 한 군데서 여러 개 싹이 나왔는데도 솎아내지 않아 먹을 것을 버렸다는 이유다. 농사를 지으려면 단호하게 하나만 남겨놓고 뽑아줘야 간격이 촘촘하지 않아 무가 제대로 자란다고 한다. 할머니는 쳐다만 보지 말고 성장이 늦은 것은 뽑아내라고 재촉하셨다.
무 농사는 시기에 맞춰 비료와 영양제도 줘야 하고, 가끔씩 무을 심은 주변 흙도 긁어줘야 한다며 호미로 긁는 것을 직접 해 보였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러실까, 이해는 되지만 내 마음과 같지 않은 할머니와 거리가 나도 조금은 불편했다.
얼마 후 옆 밭에 일이 생겼다. 우리 밭 무 잎에 벌레가 갉아 먹은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도 약을 뿌리지 못했다. 내 손으로 건강한 채소를 얻으리라는 신념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속상했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진딧물까지 생긴 것이다. 진딧물과 벌레는 옆 밭으로 옮겼고 피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리면서 우리 밭까지 뿌린 것이다. 농약이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농작물을 지으려면 견해 차이를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은 특히 땅에서 얻는 농작물이 돈으로 연결되는 입장에서 보면 내 행동은 피해를 주는 게으름이었음을 알았다.
농약은 해충만 죽이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팽이도 살고 무잎 사이에 무당벌레도 보인다. 짝짓기 하는 방아깨비도 있고 거미도 산다. 이슬에 젖은 날개를 말리는 잠자리며, 개미와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곤충들은 무밭이 집이고 놀이터고 휴식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터에 생명을 위협하는 약으로 덮어놓았으니 곤충의 아우성이 들리는듯하여 한동안 무밭에 가지 않았다.
나에게 가을 무밭은 힐링의 장소였다. 내 발소리에 놀란 곤충들이 달아날까 봐 조심스러워지는 걸음만큼 마음도 가벼웠다. 무 잎의 까슬한 촉감, 채소 풋 냄새만 맡아도 행복했다.
그런데 무청을 쓰려고 무를 뽑는 순간 행복했던 지난 시간이 후회됐다. 무가 작은 만큼 무청도 실하지 않아 시래기로 말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친환경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애정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란 것을 느끼면서 호미질 하는 할머니 손이 떠올랐다. 할머니도 처음부터 농약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손톱 끝이 뭉툭해지고 호미가 닳도록 풀과 해충을 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고된 노동에서 잠시 쉬는 일은 농약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를 이해하기로 했다.
살면서 내 안의 감성 테두리에 마음을 가둬놓고 단호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 자신으로부터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교사와 학생의 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불신, 각종 이슈가 되는 사건들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단호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다. 후회하면서도 반복되는 습관 단호함,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무 농사를 짓고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