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세찬 비가 내리더니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말라 있던 집 앞 농수로에 물이 고였나 보다. 울음소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듣는 개구리 소리가 반가워 창문을 활짝 열고 즐거운 비명 같은 소리에 집중한다.
계절은 이미 여름에 가깝다. 비 온 뒤라 바람은 한밤중인데도 끈끈하고 습하다. 살갗으로 닿는 느낌이 무거워 짜증나는데 개구리는 오랜만에 활기를 찾았다. 쉬지도 않고 울어댄다. 어떻게 왔을까. 개구리가 있는 곳은 농수로인데 농사짓던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기능을 잃었다.
한때는 드넓은 논으로 힘차게 흘렀을 물의 깊이를 물이끼로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생활 쓰레기가 쌓이는 공간으로 방치되었다. 물이 고이면 악취는 심할 것이다. 인간이 더럽혀놓고 외면한 곳으로 터전을 잡은 개구리가 반가우면서도 미안하다. 그래서 더 울었으리. 아니, 별안간 세찬 빗물에 휩쓸려 낯선 환경으로 밀려왔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혼자 울다가 근처에 같은 울음소리를 듣고 화답으로 소리를 높였으리라. 서로를 확인하며 안심하는 소리가 밤이 깊을수록 두려움의 소리로도 들린다. 환경이 더러운 장소,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빗소리, 점점 작아지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마음은 농수로에 머문다. 내가 살던 터전을 인간의 도시 개발로 빼앗긴 자연의 동물이 개구리만 있을까. 근처에 백로 서식지가 있다. 오래전부터 송절동 야산에 터를 잡고 살고 있어서 충청북도는‘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선’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근처에 ‘문암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지금의 좁은 터로 밀려났고, 이후 테크노폴리스 단지가 개발되면서 그 터마저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백로의 위태로운 날갯짓과‘송절동 백로서식지’안내판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른 아침 무심천을 향해 백로들이 날아간다. 테크노폴리스 단지 내에 아파트가 생기기 전까지는 여유로운 날갯짓이었을 것이다. 창공은 무한하고 들녘은 안전했으며 길은 자유로웠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백로가 날아다니는 길은 좁아졌다. 고층 아파트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을 감당해야 하고 사람들 삶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와 소음도 견뎌야 했다. 자유와 터전을 사람에게 빼앗기고 도로변 자투리 숲으로 내몰린 백로의 울음소리는 애절하다.
크고 날카롭다. 외침 같은 소리가 익숙하지 않아 놀라기도 하지만 창가에서 날갯짓의 무희를 보는 나는,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백로를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무리 지어 날아가기도 하고 둘 셋씩, 혹은 홀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근처 무심천이 새롭게 와 닿는다. 물은 흐르면서 생명을 품고, 백로는 날아서 생명의 물을 찾는다. 동트기 전 물빛은 백로들의 숨소리로 밝게 차오르고, 햇살의 빛을 담아놓은 무심천 저녁은 백로가 둥지를 찾아가면 제빛으로 깊게 잠긴다.
무심천 물빛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입추가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다. 이때쯤이면 백로들도 높이 난다. 날갯짓은 하늘 가까이 닿고 무심천 물은 땅 빛을 잉태하며 가을을 맞는다. 울음소리도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백로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식지 근처 아파트 주민들은 구린내와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창을 닫았고, 불만은 민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어지는 나무도 많아지면서 백로들의 쉴 곳을 빼앗고 있다.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경험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바라보는 낭만과 다르다. 둥지를 튼 소나무들은 빛을 잃었고 먹지 않은 물고기 썩는 냄새와 분변의 냄새까지 겹쳐 악취가 심하다. 창문을 열어야 하는 계절에 겪는 고충이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안이 절실하다.
오늘도 무심천은 힘차게 흐르고 백로들이 지나는 시간은 소란하다. 비가 오면 개구리 울음소리도 다시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도시개발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아직 끝은 모르지만 터를 떠나지 못하는 생명들의 소리가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