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이름이 먼저

by 조영의

닫혔던 사당 문 여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 오늘은 남편 종중 시제時祭 날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지내지 못하다가 3년 만에 지내는 것이다. 서로서로 안부가 궁금한 어른들은 일찍부터 와서 이야기 나누고 아이들은 선산 야트막한 잔디에서 썰매 타며 노는 웃음소리가 높다.

손을 맞잡기도 하고 어깨를 끌어안으며 반기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뻘쭘하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목례만 나누고 서 있다. 의복을 입고 남자들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더 어색해졌다. 이마가 땅에 닿을 듯 굽은 허리로 다니며 모두에게 인사를 나눈 대고모님이 흩어진 여자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은 대고모님은 돌아가신 친척들, 그분들의 형제, 성격, 집의 구조까지 기억한다.

남편 이름을 먼저 묻고 항렬에 따라 자리를 정해줬다. 몇몇은 결혼 전부터 인연으로 이름을 부르며 떨어지지 않기를 고집부리다가 꾸지람 듣고, 시어머니와 나이가 같아 형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새댁의 몸짓은 웃음꽃이 되었다. 결혼이란 인연으로 친척이 된 여자들은 처음은 낯설고 어색했지만, 촌수를 알고 호칭을 부르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시제는 남자들만을 위한 의식이고 고루한 전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했다. 돌림자 이름의 자긍심도 갖게 됐다.

내년 봄이면 우리 집도 생명이 태어난다. 며느리 임신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얘기를 나눴다. 돌림자로 짓기를 권하자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낯빛을 바꿨다. 부르기 쉽고 느낌이 좋은 이름을 짓겠다고 한다. 나도 속으로 같은 생각이라서 받아들였는데 뿌리의 힘을 느껴 보니 흔들렸다.

시제에 참석한 사람들 방명록에도 이름의 변화가 보인다. 가장 높은 ‘수’다음은 ‘병’인데 참석자 모두 돌림자 이름이다. 다음 돌림자 이름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 초반이다. 돌림자로 짓다 보니 똑같은 이름도 있고, 돌림자로 짓지 않은 이름도 여럿이다. 그다음부터 이름은 돌림자가 없다. 개성 있고 예쁜 이름에서 신선함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돌림자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제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한나절 남짓 걸릴 거라며 대고모님은 종 할머니 얘기로 바꿨다. 종 할머니 얘기는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뭉클하다. 시조이신 할아버지는 사육신 성삼문의 외가다. 역모죄로 모두 죽게 되자 종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업고 지금의 진천 땅으로 도망 온다. 그리고 신분을 속여 키운다. 세월이 흘러 역모의 누명을 벗고 신분이 회복되기까지 보살펴주셨다. 할머니 헌신의 은공을 종중에서는 매년 제를 지내며 기억한다. 선산 아래는 종 할머니 무덤이 있다. 그곳은 인기가 많다. 제가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나누는 장소다. 과거는 신분 평등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어도 종이 되었지만, 현재는 가장 위대한 종踪이 되었다.

사당 제가 끝났나 보다. 남자들이 선묘로 오른다. 제 의식을 기웃거리며 지루하게 놀던 아이들도 같이 따라 오르고 푸른 도포 자락이 바람에 날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이 놀라운데, 참석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대고모 할머니는 흐린 눈빛으로 오래 바라본다. 젊은 사람들이 시제를 외면한 지는 코로나19 이전부터였다. 관점의 차이를, 시대의 변화를, 젊은 사고를 이해하면서도 뿌리와 전통에 관심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때로는 비현실적인 전통과 종중의 규범이 단절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준다는 것을 참석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마음이 한 뼘은 커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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