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말

by 조영의

A 선생님과 나는 열다섯 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같이 만나는 사람들은 언니라고 부르는데 나는 언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이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놀라운 기억력, 재치와 재담은 무궁했다. 함께 있으면 분위기는 훈훈했고 유쾌했다. 그가 지닌 낭만적 지성과 독창적 예술세계도 독보적이라 믿었다. 아무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같은 그의 삶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 것은 웃지 않는 공감능력과 단순해진 어휘였다.

부정 언어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슬프다, 우울하다, 재미없다, 덧없다…. 가장 많이 쓰는 말은‘아프다’이다. 만나면 아프다는 말부터 시작한다. 아픈 곳도 여러 곳이어서 통증을 호소하는 짜증 섞인 소리와 앓는 소리까지 겹쳐 듣는 나도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위로하고 반응할수록 말의 수위는 높아져 원망으로 이어지고, 흥분하면 이글어진 표정과 격한 동작, 말투까지 다른 사람처럼 보여 낯설었다.

대화에도 신호등이 필요하다. 멈추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방향의 차들이 안전하게 달리듯, 대화에서 멈춤의 배려가 없는 그에게 조금씩 지쳐갔다. 건성으로 위로하고 때로는 꾀병의 엄살이라 반박하며 만남을 회피했다.

그때 아프다는 말을 이해 못 했다. 그래서 아프다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가볍게 들었다. 나는 늘 바빴고 지쳐있었다. 그래서 만나면 격조했던 시간만큼 좋은 이야기 나누고, 소리 내어 웃고, 토론하고 싶은 주제는 냉철하게 비판하고 싶었다. 갈증 해소가 휴식보다 간절했다. 그러나 탄식과 괴이한 표정에서부터 기대는 무너지고 만나는 시간이 어색했다. 충만 없는 만남은 무의미했다. 실망하고 귀찮은 감정만큼 거리도 멀어졌다.

지금, 나는 A 선생님이 아프다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곳이 아프다. 건강은 자신 있었는데 잃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순간이다. 정말 아픈데 나보다 젊은 동료에게 말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머뭇거린다.‘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과 관련이 있어서 집중하는 것만 보이는 것을 말한다. A 선생님께 나는 보이는 것만 집중하다 보니 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공감은 같은 경험을 똑같은 밀도로 체험해봐야 온전히 느끼고, 아프다는 말 또한 외롭고 관심 받고 싶다는 에둘림의 마음이라는 것을 내가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말이 많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주도 하는데 성격으로 굳어졌다. 전체의 의견을 수렴할 때도 분위기를 파악하기 전에 의사표시를 하다 보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내 실수가 타인에게는 타산지석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았다. 직업병이기도 하다. 문제에는 꼭 왜냐하면, 하고 설명을 하는데 다양한 실례가 본질을 흐리게 할 뿐더러 까칠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하나는 외롭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정말? 반문할 수 있으나 경험으로 보면 외로운 사람은 말을 많이 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 유독 말이 많은 아이가 있다. 들어보면 그저 그런 얘기다. 그런데 진심으로 들어주면 다음에도 찾아와 자기 주변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준다. 아이와 있을 때 나는 잘 들어준다. 관심 갖고 있다고 상대에게 믿음을 주면 변한다는 것을 안다. 또 말이 많은 마음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까지 더 많아진 요즘, 가장 무서운 것은‘아픈’몸이고‘아프다’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