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지개를 찍던 나에게, 로젠은 너무 가혹했다”
부제: 경험의 멸종, 혹은 다른 경험의 시작
지하철 좌석마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
모두가 같은 각도로 손바닥만 한 화면을 들여다본다.
하늘에 무지개가 걸린 순간조차, 우리는 먼저 스마트폰을 꺼낸다.
눈으로 보기보다 찍어두는 일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그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몸의 경험’에서 멀어졌는지를 상징하는 것일까?
롱블랙에 실린 크리스틴 로젠의 인터뷰, 「경험의 멸종」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은 점점 우리를 ‘참여자’가 아니라 ‘관객’으로 만들고,
생각 없이 스와이프하는 손가락만 바쁘게 만든다고.
그 결과 공감은 옅어지고, 인내심은 사라지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싫어진다.
어쩐지 너무 정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내 생각은 달랐다.
로젠이 말한 무지개 이야기에서 나는 멈췄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꺼내 무지개를 찍는 모습.
그녀는 그걸 ‘몸의 경험 상실’로 해석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쩌면 그들은 무지개보다 먼저 ‘누군가’를 떠올린 것 아닐까?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길을 걷다 벚꽃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다.
디지털은 경험을 가로채는 게 아니라,
경험을 나누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과거에는 ‘같은 곳에 있어야만’ 나눌 수 있던 풍경이,
지금은 다른 도시, 다른 시간 속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은 충분히 인간적이다.
로젠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인내심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다.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린 인간,
상대방을 천천히 알아가는 법을 모르는 관계,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스마트폰을 여는 손.
이 진단은 뼈아플 만큼 정확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기술이 우리를 성급하게 만든 걸까,
아니면 우리가 기술을 성급하게 소비해온 걸까?
지금의 소비 구조는 ‘편리함’이 아니라 ‘업데이트’에 중독돼 있다.
신제품은 매번 더 얇고, 빠르고, 세련됐다고 말하지만,
그 속도를 인간은 따라가지 못한다.
내 경험만 봐도 그렇다.
플립4 힌지가 고장 나 몇 번을 수리하다 결국 S20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별 불편이 없다. 오히려 더 낫다.
배터리도 오래 가고 튼튼하다.
이제는 기술이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사람이 기술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자본과 속도, 그리고 소비의 습관 아닐까.
로젠은 ‘직접 헤매는 여행’을 권한다.
리뷰 없이 박물관에 들어가고, 후기 없는 음식점에 들어가는 일.
듣기엔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회의적이다.
지금은 ‘눈뜨고 코 베이는’ 시대다.
리뷰를 안 보면 손해를 보거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건 단순한 소비 문제가 아니다.
나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경험의 회복’은
안전한 세계에 사는 사람의 로맨스처럼 들릴 때가 있다.
위험을 감수하라고 말할 때,
그 감수가 누구에게 가능한 일인지 먼저 묻고 싶다.
그럼에도 이 칼럼은 내 삶을 돌아보게 해줬다.
기술은 정말 도구일 뿐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 질문조차 너무 쉽게 넘겨버린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무지개를 찍고,
길을 헤매기보다는 지도를 켜고,
식당 후기를 읽는다.
하지만 그 사진을 누구에게 보낼지 고민하고,
너무 빠른 업데이트에는 회의하며,
어떤 리뷰는 믿지 않기로 하는 작은 훈련을 한다.
기술은 내 손안에 있지만,
그 기술이 나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기술과 함께 살아갈지를 고르는 일.
그게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 함께 읽기 ──
크리스틴 로젠 인터뷰 「경험의 멸종 : 눈앞의 세상 대신, 네모난 화면만 보는 당신에게」
https://www.longblack.co/note/1690?ticket=NT2538dc0a4e2acb610f6f1074099a189e9b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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