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ORD #2

“어른이 된다는 건, 불행을 배우는 일일까?”

by The Lazy Lab
부제: 불행을 물려주지 않는 언어를 찾아서


Chapter 1.

나이로 덮이는 말들


“아직 몰라서 그래.”


한국에 와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하는 말과 경험담에는

늘 같은 말이 따라왔다.


“너는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어린 마음엔 그 말이 불만으로만 남았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결혼 전에 오래 만나보고 싶다.”

“재산보다 마음이 부유한 사람과 살고 싶다.”


그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한 가지였다.


“너도 결혼해봐야 알아.”


내가 겪지 않은 것을 핑계 삼아

내 생각과 마음이 쉽게 무시되는 순간.

나는 나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반항하듯, 속삭였다.


“그래요. 그쪽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니 유감이네요.”




Chapter 2.

커피와 쓴맛


커피도 그랬다.


중학생 때 처음 마셔본 커피는

너무 쓰고, 도저히 맛이 없었다.


캐나다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은 말했다.

“입맛에 안 맞나 보네. 그냥 티 마셔도 돼.”


하지만 한국 어른들은 달랐다.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봤구나.”


단순히 맛의 차이였을 뿐인데,

이곳에선 인생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귀에 쓴 여운으로 남았다.




Chapter 3.

그 말의 속뜻


한국에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


아직도 낯설고,

불만은 여전히 쌓인다.


그래서 나는

AFTERWORD라는 칼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이라는 사회와 문화 안에서

그들의 신발을 신어보니—

to put myself in someone’s shoes.


* 영어 속담으로, ‘누군가의 신발을 신는다’는 말은

상대의 처지에 서 본다는 뜻이다.


그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 말 뒤에는, 사실—
다른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정말 원하는 건
공감과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차갑고 무심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고통이 숨어 있었다.


질투가 아니었다.
악의도 아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버텨낸 힘듦과 고통에
누군가는 공감해주길 바라는 간절함,
그 마음이 서툰 모습으로 삐져나온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좋겠다. 그리고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겪은 쓴맛을
너만큼은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 여유를 아직은 다 갖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키워나갈 수 있기를.


내리갈굼,
“너네가 덜 살아봐서 그래” 같은 말로
누군가의 경험을 무너뜨리지 말자.


각자 다른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조금은 서로에게 그늘이 되고,
작은 위로가 되어주자.


마치 불행이 당연해야 한다는 듯한 말은
이제 삼가자.




AFTERWORD:

존중의 언어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신다.


가끔은 라떼 한 잔.

혹은 작은 종이컵에 타 마시는 맥심 정도.


그리고 나는 다정한 사람을 만났다.


어른들이 겁주던 결혼 이야기가

무색할 만큼,


사랑과 다정함이

흘러넘치는 관계 안에서.


내 경험이 정답은 아니지만,

네 경험도 틀린 건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길 위의 고단함만큼은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리갈굼이 아닌,

“너는 몰라서 그래”가 아닌,

다른 언어를 건네는 사회.


경험을 지워버리지 않고,

시간을 존중해주는 목소리.


불행을 당연한 듯 물려주지 않고,

다정이 습관처럼 이어지는 사회.


언젠가, 우리 모두

그런 언어를 건네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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