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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우주여행을 가고 싶어.” 마흔 살 넘은 아내가 어느 날 한 말이었다. 상고를 나와서 회사 경리 일을 하다 결혼 후 육아에만 전념했던 그녀다. 일자무식인 내가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그녀는 그런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무시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가능성을 말할 가치도 없었다. 나는 보름달처럼 부푼 에그 베네딕트의 노른자를 쪼개며 말했다. “그런 꿈을 꾸기엔 이미 늦었어.”
나는 부정적인 말을 믿지 않는다. 안 된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거다. 1%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아내를 만났을 때도 나는 주변의 반응은 개의치 않았다. 너무 현실적이고 농담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게 엉뚱한 그녀는 어찌 보면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좋았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연히 그 말은 금방 잊었다. 사랑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런 내가 가능성을 부정했다. 우주여행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생각에.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말했어. 난 우주여행을 갈 사람이라고.” 거짓말처럼 그녀는 땅에서 사라졌다. 평소 돕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이었다. 길에서 사람을 부축하다 차에 치여 버렸다. 지겹도록 우주여행을 가고 싶다더니 정말 밤하늘 별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병나발만 불며 하루를 사는데 미친개 한 마리가 따로 없었다. 흐느끼고 돌아보니 어린 자식들이 보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그녀를 떠나보내려 유품을 펼쳐 정리하는데 ‘꿈의 노트’라는 책이 보였다. 일일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았던 것 같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던 그녀의 꿈 중 하나는 음식 장사였다. 다양한 요리를 팔겠다고 저만의 레시피를 개발했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조리법이었다. 조합할 수 없는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도 그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꿈은 우리 가족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맛집 소리를 듣더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백종원 같은 사업가가 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정하기를 싫어하는 나는 놀라운 일들을 보며 내가 말뿐인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전혀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엉뚱하다 느낀 아내가 오히려 내 신념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일이 잘 풀려도 그녀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동시에 이제 세상에 없는 그녀에게 내가 너무 얽매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앞만 보고 가는 게 더 위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저 멀리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나도 편히 내일을 향해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꿈의 노트를 하나씩 지워가기로 했다. 그녀의 꿈은 내 꿈이 되었다. 전국의 보육원을 후원하며 아내와 같은 처지였던 아이들을 도왔다. 아내의 모교에도 기부했다.
그리고 노트에 마지막으로 한 줄을 긋기 위해 나는 러시아로 향했다. 며칠 뒤에 우주로 향하는 탐사선 발사가 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탑승 기회가 주어진다. 실제로 탈 기회가 아닌 물건을 넣어 우주로 보내는 일종의 기념 같은 행사다. 나는 아내와 추억이 담긴 물건을 넣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우리의 메신저였던 삐삐. 배터리도 넣었고, 새로 개통도 했다. 아마 이 삐삐가 우주를 거닐고 있어도 해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성메시지도 저장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메시지가 저장됐다. 이제 그녀가 우주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여행을 갈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