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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25. 2024

무궁화꽃은 피우기 바쁘다

노동요 - 철도 인생

전철차장 업무를 하면 ‘편승’이라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사전적 정의로 남이 타고 가는 차편을 얻어 탄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차를 타고 특정 역에 가야 하는 것이다. 보통 편승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일하기 위해 특정 역에 가는 것과 내가 일을 마치고 특정 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 사업소가 있는 역에서 교대하고 열차에 타 운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업무 형태지만 선로를 달리고 있는 열차가 아닌 차량기지에서 나오는 열차를 최초 운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차량기지가 가까운 역에 미리 가서 열차를 타야 하는데 이를 위해 내가 운행하지 않는 열차를 타고 해당 역까지 간다. 예를 들면 광운대역 인근 차량기지에서 나온 열차를 운행하기 위해 구로역에서 다른 사람이 운행하는 열차를 타는 것이다. 이것이 전자에 해당하는 편승이다. 후자는 내 사업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안역까지 열차 운행을 마치고 교대한 후 다른 사람이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구로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나는 천안역까지 운행 후 편승으로 돌아가는 일을 했다. 천안역은 전철뿐만 아니라 무궁화호 같은 일반 열차도 운행하는 역이다. 나는 더 빨리 돌아가기 위해 전철이 아닌 무궁화호 열차에 탄 적이 있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수는 예상을 초월했다. 천안을 시작으로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열차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좌석만이 아니라 입석하는 사람도 참 많았는데 이들의 모습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낚시터 같은 곳에서 볼 법한 간이 의자를 들고 타 통로에 앉아가는 사람, 지저분해 보이는 바닥에 그냥 앉아 가는 사람, 열차 계단에 걸터앉은 사람 등 장시간 동안 서서 가기 힘든지 자기만의 방법으로 나름 편하게 가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앉아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용변을 길게 보는 줄 알았는데 좌변기에 앉아가려고 한 것 같았다. 열차를 많이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궁화호는 화장실 냄새가 참 고약한데 그 인내심이 참 대단해 보이면서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좌식 행태뿐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행동도 다양했는데 민낯에서 완벽한 꽃단장으로 변신하기 위해 화장하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삼매경인 사람,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 무거운 눈을 붙이고 조금이라도 자는 사람 등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통점이라 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하루의 시작이었을 이른 아침이었는데 벌써 고돼 보였다.


‘코레일톡’이라는 기차 예매 앱을 봤을 때 이른 아침부터 표가 매진이길래 ‘뭐 그리 많이 타나?’ 생각했는데 객실만이 아닌 통로도 사람으로 꽉 차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태연하고 묵묵하게 갈 길 가는 모습들을 보니 그들에게는 워낙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무신경해 보였다. 각자의 삶을 다 알 순 없지만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니 다들 살기 위해 바빠 보였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목표, 꿈, 희망. 모두 다를 것이다. 그것을 꽃이라고 한다면 한 송이 꽃을 피우게 하려고 우리는 참 많은 애를 쓰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무궁화호는 국민의 발로써 많은 수고를 하며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어줬다. 기차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가족,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일, 이동 판매 카트에서 음식을 사며 먹어 본 일. 무궁화호라는 꽃은 그때 만개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만개하기 참 어려운 상황이다. 무궁화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열차 이용자가 다른 곳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벽지 노선뿐만 아니라 수도권 근방까지 말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수입이 적어 적자가 일어난다, 열차가 너무 노후화됐다. 무궁화호가 사라지면 누군가의 이동 수단이 사라진다. 무궁화호를 KTX로 대체한다면 몇 배 비싼 가격에 승객의 지출 부담은 커진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많은 이가 동의할 적절한 대체 방법은 마련되지 않은 채 일을 한다면 많은 이가 피해를 볼 것이다.


무궁화호도 무궁화호에 탄 사람들도 참 바쁘고 피곤하다. 무궁화꽃은 여전히 피우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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