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 철도인생
함께 동아리 활동으로 축구를 하는 분 중에 이번 6월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을 하신 분이 있다. 일반 퇴직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은 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 그랬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러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시인이셨다.
경기를 마치고 신간으로 나온 시집을 선물 받았다. 20권이 넘는 책을 무겁게 들고 오셔서 한 사람씩 나눠 주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한 명씩 팔면 꽤나 큰돈을 벌 수 있는데 당연하다는 듯 주셨기 때문이다. 책을 선물 받을 줄 알았으면 사인이라도 받았을 텐데 미리 펜을 준비하지 못해 그러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서 그분 이름을 검색해 지금까지 내신 책을 다 샀다. 나온 지 오래되어 절판된 책은 중고 서적 검색을 해서라도 샀다. 정식 작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도 나름 출판한 적이 있어 작가나 예술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음 경기에 책을 들고 가 사인을 받았다. 생각지 못했는지 쑥스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그 분 말고도 사내에 다른 시인도 있고 수백 페이지의 책을 집필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다른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겸업하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직업도 겸업하려면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회사의 겸직허가 운영 내규를 살펴보면 ‘임직원은 공사 직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다른 직무를 겸하고자 하는 경우, 본 내규에 따라 공사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재산의 이득을 위해 하는 경우는 무조건 허가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은 활동은 허가받지 않고 활동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아 조심스럽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답게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수익 없이 활동한다면 상관없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블로그 등 SNS 활동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순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몰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양심 있게 활동하는 게 추후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길이다.
나 자신이 하찮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라고 활동하는 직장인들을 무시했었다. 학자, 정치인, 작가, 발명가 등으로 활동한 정약용. 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화가로 활동한 이상. 이런 사람들만이 다재다능한 천재라고 생각했었다. 후세가 이들의 이름을 회자하듯 내 주변의 재능 많은 사람들도 나중에 이름이 오르내릴지 어떻게 알겠는가. 또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는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다 내 오만과 무지가 잘못이다.
축구단에서 작가님과의 만남은 내가 그동안 무식함을 뽐냈던 것을 깨닫고 내 발전의 동기로 삼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