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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요

새의 기억

노동요 - 철도 인생

by 와칸다 포에버

철도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얽히는 동물은 새다. 새는 역 여기저기 집을 짓고 사는데 역 구조가 집을 짓기 좋고 앉아 있기도 좋은가 보다. 실상은 인간들이 자기 영역을 넓히면서 산을 파괴하고 나무를 베며 자연스럽게 새가 있을 공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사람 사는 공간에 함께 지내는 게 맞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인간으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사람이 익숙하니 새들은 과한 행동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을 가더라도 날갯짓으로 나는 것이 아닌 그만큼 빠른 그들의 보법으로 움직인다. 보통 역 출구에 모여 있고 더 대담한 녀석들은 승강장까지 들어와 저마다의 방식으로 쉰다. 그런데 무슨 연유와 어떤 방법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차나 역 안에 들어와 자기도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해 떠도는 녀석들은 사람의 힘을 이용해 내쫓아야 한다. 역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펄쩍 뛰고 돌아다니던 녀석을 직접 손으로 잡아 밖으로 내보낸 기억이 있다.


화장실에서 은밀하게 용변을 보는 사람과 달리 이 친구들의 생리 현상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승강장 한구석이 새똥으로 가득할 때가 있는데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그 부분이 그들의 화장실로 지목된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의 똥이 되었건 기본적으로 분비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새똥은 자칫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리 대상이다.


어디서 그렇게 적절한 크기의 자재를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새의 집은 상당히 정교하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굵지도, 얇지도 않은 나뭇가지를 차곡차곡 쌓아 집을 만든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허가 건축물이라 금방 철거 대상이 된다. 역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집을 지으면 찾기 힘들어 철거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전차선 근처에 집을 지으면 금방 허물린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새들은 며칠간 잠잠하다 다시 돌아와 집을 짓는 수고를 한다. 그럼 또 인간이 부셔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그냥 놔두면 안 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전차선에 문제가 생기면 열차가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추운 겨울이 될 때면 새들이 V자 편대를 만들어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세마역과 오산대역 인근에는 새가 꽤 많은지 주변 유리창에 독수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아마 새를 쫓아내려는 것 같은데,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가 잦아 그런 것 같다.


새들의 충돌 사고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시대 화가 솔거 이야기만 봐도 오래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솔거가 황룡사 법당 벽에 소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혀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열차를 타고 세류역에 도착했을 때 작은 참새가 승강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봤다. 아마 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근무 중이기에 차에서 내릴 수 없어 안타깝게 바라보고 역을 떠났는데 며칠 지나 다시 세류역에 오니 계속 그대로 있었다. 다음에 오면 내가 잠깐 열차에서 내려 치워 놓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조금 더 빨리 움직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했다.


어쨌든 새는 철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유해 동물이다. 그래도 먼저 드는 생각은 함께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다. 이들의 안전과 생존을 최대한 보장하고 서로 활동의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경계를 지을 방법을 꾸준히 고안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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