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 철도 인생
우리 회사는 3만 명 이상 소속되어 있는 회사다. ‘철도에서 일하면 세 번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헤어짐도 잦지만 그만큼 다시 만나 함께 일하는 것도 잦은 곳이다. 그럼에도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업무 분야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보다 퇴사할 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헤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 철도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수많은 사람이 일하는 이곳에는 개성 다양한 사람이 많다. 나는 이들을 ‘기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이 단어는 한 가지 뜻만 있는 게 아니다. 독특한 지조와 행실이 있어서 세상의 풍속과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기인(畸人)이 있고 성격이나 말, 행동 따위가 보통 사람과 다른 별난 사람이라는 뜻의 기인(奇人)이 있다. 나는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이 두 기인의 기질을 가진 이를 각각 간접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이들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기에 그들에게 동의를 받을 수 있을지 이 글을 읽는 이가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근무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이들이기에 한 번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전자의 기인은 이름과 근무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이였다.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복을 나누고 싶다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기가 오랜 시간동안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것은 많지만 누군가에게 베푼 적은 없었다면서 이번에 그렇게 하고 싶다는 글이었다. 자기 사내 메일 주소를 남길 테니 복 받고 싶은 이유와 이름과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익명의 글이고 메일 주소를 알아도 추적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아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나는 업무 스트레스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장난이나 사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있었지만, 심심풀이 겸 속풀이로 내 사정을 적어 보냈다.
며칠 뒤 익명으로 우편이 우리 집에 왔는데 열어 보니 힘내라는 편지와 함께 연금 복권과 로또 복권이 들어 있었다. 게시판 글쓴이가 말한 복이 복권이었다. 당첨까지 됐다면 엄청난 복이었겠지만 놀랍게도 번호가 하나도 맞지 않는 꽝이었다. 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자기 챙기기에 급급한데 남의 복까지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섣불리 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그의 마음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후자의 기인은 한 지방의 차량 사업소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이 기인도 사내 게시판의 한 분류인 물품 거래 게시판에서 본 사람이었다. 물건을 아주 열심히 파는 사람이었는데 올리는 물건 모두 이 사람이 라디오 방송의 경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여러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인데 사연도 많이 보내고 그만큼 경품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나는 경품 추첨 같은 것에는 운이 참 없는 사람인데 다양한 물건을 자주 팔겠다며 올리는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했다.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어 메일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라디오 사연이 당첨되고 경품을 자주 받을 수 있는지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 그에게 답이 왔는데 크게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일리 있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라디오를 자주 듣는 것이었다. 자주 듣다 보면 DJ나 라디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부합한 사연을 보냈을 때 당첨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직장 생활 관련 이야기를 한다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애환이 담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들이 엽기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 피식하고 웃어도 괜찮은 이야기인지 더 세세하게 파악하고 맞춰 보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관련 사진까지 첨부하면 더 쉽게 당첨된다고 한다.
이렇게 원격으로 비법까지 배웠지만 라디오 들을 여유가 없어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활용해 본 적이 없다. 한동안 이 기인이 게시하는 글이 없어 근무 중 라디오만 들어 회사에서 잘렸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한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남자 이름으로 보이는 사람이 여자 속옷을 판매하는 글을 올렸길래 호기심에 봤더니 이 기인이 라디오 사연으로 당첨됐다고 판매하는 글을 올린 것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글을 읽으면서 아는 사이도 아닌데 정말 반가웠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 연락할 생각을 한 나도 어쩌면 기인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런 기인들이 있으니 일하는데 작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