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창을 바라보며 한 사색

by 와칸다 포에버

학교에 다닌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가끔 자격증 시험이나 어학 시험을 치를 때 방문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시험에 열중하던 것도 옛일이 되면서 학교에 발을 들이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되었다. 회사 시험 때문에 학교에 들르게 되면서 오랜만에 책상에 앉을 일이 생겼고 마침 앉은 위치가 창문 바로 옆이라 창밖을 바라보게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의 시설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졌다. 운동장의 크기는 줄어들고 그만큼 다양한 건물이 늘어난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교육 환경과 복지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난다. 운동장의 질도 나아졌다. 돌이 굴러다니는 흙 운동장이 인조 잔디가 깔리기도 하고 육상트랙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내게는 생소하기는 하지만 내 학창 시절에 느꼈던 분위기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학생 때는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잦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은 줄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세상을 향한 관심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관심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창밖을 보겠다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몸에서 잊은 줄 알았던 행동을 자연스럽게 다시 하니 참 신기했다.


나는 창밖의 풍경이 참 좋았다. 떨어지는 낙엽, 내리는 비와 눈, 햇살을 맞으며 뛰어노는 체육 시간의 학생들. 같아 보여도 날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에 사색할 수 있었다. 여러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지만,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그 나이 때 겪었던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오랜만에 창밖을 보며 눈에 먼저 띄는 것은 구름이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구름은 멈춰 있지 않고 조금씩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요소에 의해 사라지거나 모양이 바뀔지도 모른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내심 부러웠다.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이며 왜 살고 있는 것이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수업 속 선생님의 목소리와 지식 전파가 눈과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에 생각했다. 무릎을 치는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때는 자괴감에 무너지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열심히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조금 더 노력했다면,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했다면 나는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지금이 가장 나은 순간인 걸까. 과거의 내가 현재와 미래를 고민했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창을 보며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정에 따른 상상으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칠 뿐이지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앞으로의 삶에 후회가 덜하도록 열심히 살자는 다짐이 최선이었다.


창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없었을지 모른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간다.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말로 그칠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창밖을 본 이 시간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닌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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