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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까지 와서 성추행을 당하다니_1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by 등등젬

카페테리아에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조용하고 느리며 지루했던 시골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오픈 시간에 스케줄이 맞으면 아무리 늦어도 6시 30분에는 일어나 캠퍼스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강제 미라클 모닝이 일상이 되었고, 넓지 않은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채우고, 계산을 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덕분에 하루 만보 걷기는 기본이었다. 활기찬 생활에 금세 흥미를 붙이게 되었고, 포지션, 나이, 인종에 상관없이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꽤 빠르게 가까워졌다.


카페테리아에는 크게 세 가지 포지션이 있었다. 직접 손님을 응대하며 홀에 나와 있는 캐셔,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 그리고 두 명의 매니저였다. 단 하나, 특수한 포지션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2-3번 출근해 짧게 근무하는 설거지 담당자였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었던 설거지 담당자 D는 지적 장애가 있다고 들었다. 정확히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학교와 관련 단체가 연계해 일주일에 몇 시간씩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듯했다. 물리적으로 포지션이 다르고,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어 D는 주로 뒷문으로 출퇴근하며 가볍게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였다. 이미 2-3년정도 근무한 경력자라곤 하지만, 대부분 짧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로 구성된 환경 탓에 D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오래 일한 매니저 두 명과, 아르바이트생 중 가장 오랜 기간 일한 P 정도가 설거지가 밀려 있을 때 도와주거나 집기 정리 등을 위해 뒷주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D 역시 주어진 설거지 업무에 묵묵히 집중하는 편이었다.


토요일 오전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시간대였다. 수업이 거의 없어 설렁설렁 일하며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운 좋게 친한 친구들과 함께 토요일 오전 스케줄이 잡혀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맑고 따뜻해서 그런지 몸까지 가볍게 느껴졌다. 주방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가끔 주방에 들어가 간단한 일을 돕거나 설거지를 하곤 했는데, 이날은 내가 설거지거리를 식기세척기에 넣게 되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컵을 들고 뒷주방에 들어서니, D가 일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듯했다. 내 손에 들린 컵을 보고 D가 도와주겠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막 일을 끝내고 쉬는 사람에게 굳이 다시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아 내가 하겠다고 말한 뒤 직접 정리하기 시작했다.


뒷주방은 ㄱ자 형태로 벽을 따라 큰 싱크대 두 개와 대형 식기세척기가 이어진 구조였다. 나는 애벌세척이 필요 없어 보이는 컵들을 식기세척기용 랙에 옮기기 위해 ㄱ자 구조의 꺾인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라도 컵을 떨어뜨릴까 조심조심 옮기고 있던 중, 내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 인기척조차 없이 느껴지는 이상한 움직임이었다. 누군가의 신체 일부가 내 엉덩이에 빠르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각이었다.


너무 놀라 소리도 못 낸 채 뒤를 돌아보니, D가 놀란 듯 뒤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나는 당황한 채 “너 여기서 뭐 해?”라고 물었고, D는 “아무것도 안 해”라고 대답했다. 그 짧은 대화는 마치 “밥 먹었어?” “응, 먹었어”처럼 평범하게 흘러갔고, 순간 내 머릿속은 정지된 듯 아무 판단도 서지 않았다. ‘내가 뭔가 착각했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몸을 돌려 컵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뒤통수 뒤에서 D의 숨소리와 함께 똑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이건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급히 주방을 통해 홀로 나왔을 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P를 붙잡고,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방금 D가 나를 성추행한 것 같아.”


말을 내뱉으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P는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고, 나는 방금 일어났던 상황을 최대한 정확히 설명했다.

그때 P가 내뱉은 한 마디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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