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 형편이 좀 나아질 때, 한 90년대 초중반인 것 같다. 그때 우리 집 거실에는 200만 원 전축(오디오세트)이 있었다. 아빠는 200만 원의 낭만을 만끽하기 위해 일요일 아침 8시마다 송골매 노래로 나의 아침을 깨웠다. 당시에는 굉장히 시끄럽고 짜증 났지만어느새 나도 모르게 송골매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 누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고, 가요보다는 팝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 소녀였다. 가요 톱 텐보다는 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뮤직 타워를 밤새 녹화해서 소장했고, 인기가요 테이프보다는 나우 시리즈를 모았다. 그리고 건즈 앤 로지즈, 콘, 림프비즈킷, 오아시스 등 락밴드 사진을 스크랩해서 모았다. 당시 장래 희망이 팝 기자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자연스럽게 나도 누나의 영향을 받아서 락 음악을 좋아했다. 명절에 용돈을 받으면 일부 엄마한테 뺏기고 남은 1~2만 원으로 테이프를 샀다. 또래 친구들은 알 수 없을 법한 외국 락밴드 테이프가 책상 한편을 차지했다. 음반들을 볼 때마다 난 이런 멋진 걸 갖고 있어라는 마음으로 매우 뿌듯했다.
8090 주점 하시는 형님한테 기부했던 아까운 테이프들...내가 왜 줬지..?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소리바다와 윈앰프가 생겼다. 이제 테이프나 시디를사지 않아도컴퓨터만 켜면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큰 누나는 윈엠프로 음악 방송을 했고, 어깨너머로 많은 음악을 들었다. 누나와 나는 mp3를 다운로드해서 장르별로 정리했다. 그중에 너무 좋은 앨범은 시디로 샀다. 날이 갈수록 라이브러리는 두툼해졌다. 나만 알 것만 같은 느낌, 요즘 말로홍대병, 중이병 비슷하게 그 라이브러리들이 나를 대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128메가짜리 MP3 꽂고 등교할 때 나는 커트 코베인이고, 시드 비셔스였다.
추억의 윈엠프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내가 전역할 때 스마트폰이 보편화 됐다. 스마트폰 하나면 손가락 까딱까딱 몇 번으로 어디서든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검색 몇 번으로 좋아하는 척하면서 취향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 앨범을 1번부터 보너스 트랙까지 통으로 듣는 건 지루해졌고, 곡의 기승전결보다 하이라이트 몇 초만 듣고 플리에 넣을지 말지 고민한다. 그 고민을 대~충 끝내고 나면쏟아져 나오는 노래들 사이에서 허우적 대다가 과부하가 온다. 그래서 내가 뭘 들었는지 그 노래가 누구 노래인지 도통 생각이 안 난다.그래서 요즘엔 들을 건 많은데 들을 게 없다. 요즘 노래는 운동할 때 일할 때 카페 술집 혹은 쇼츠 등의 비지엠 정도로 소비된다. 매클루언의 말처럼 가벼워진 미디어(전달방식)와 함께 음악자체도 가벼워져버린 것 탓에 곡하나하나에 대한 애정도 가벼워져간다. 마치 대만 카스테라, 탕후루, 요아정처럼 스쳐지나간다. 이런 분위기가 나쁘다고만 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서운한 건 사실이다.
서운한 마음의원인이흰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 나의 탓인지, 시대의 탓인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리워하는 전축과 테이프, mp3도 LP세대 혹은 그 이전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볍고 서운한 매체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가볍고, 편리해질수록아우라도, 감동도사라진다. 편리한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나이들수록 느낀다. 요즘엔 좋아하는 척하기가 너무 쉽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벼슬은아니지만, 나만의 것이 어딘가 모르게 무색해지는 것... 그게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