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추락의 해부, 죄 많은 소녀
영화 '라쇼몽', '추락의 해부'는 어떤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취향저격...살인은 아님..)
라쇼몽은 한 살인 사건에 대해 관련자들이 각각 다른 진술을 하면서 모호해지는 진실을 다룬다. 각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객관적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에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신이 무언가 확신하고 있는 거짓이 있다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처럼 진실을 단일한 시각에서 정의 될 수 없으며,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추락의 해부는 한 남성이 자택에서 추락사한 사건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법정 드라마다. 아내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사건의 정황은 복잡하며, 법정에서의 증언과 증거 분석 과정에서 시간이 지날 수 록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함이 드러난다. 영화는 갈 수록 사건의 파편만이 존재할 뿐 통합된 진실의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 사건이 단순한 선과 악의 문제로 규정될 수 없으며, 법과 사회가 진실을 결정하는 방식과 관계와 상황의 주관성에 의문을 던진다.
반면 영화 '죄많은 소녀'에서는 한 학생이 자살을 하자, 교사, 친구, 부모, 형사까지 등장인물 모두는 영희 한 소녀를 사건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영희가 친구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영희를 가해자로 낙인찍고, 사람들은 영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에는 친구사이의 복잡한 관계, 가족의 문제, 학교의 무관심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 어쩌면 이 모든게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는 특정 개인에게 사건의 모든 책임을 돌리고, 본질을 단순화하려는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죄많은 소녀에서 처럼 현실에서는 다층적인 진실이 무시되고, 단순한 원인과 결론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환원주의와 단일 원인 오류의 전형적인 사례이며,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음모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위기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제로는 다층적인 요인이 얽혀 있는 문제를 단순한 인과관계로 축소시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원채 인간은 동일성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개별자를 보편자로 환원하는 것을 좋아한다. 복잡한 실상으로 부터 오는 정신적 부담, 깊게 생각하는 것과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괴로워 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문제나 비극에 대한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 했을 때 오는 불안감 해소와 안정감은 매우 중독적이다. 그리고 이런 책임전가를 다수가 함께 할때 생기는 결속력과 도덕적 우월감, 권력 또한 중독적이기에 이런 악순환은 계속된다.
우리는 이런 중독을 잘라내고, 어떤 사건이나 사태를 마주할 때 단일한 원인에 의존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단일한 원리나 원인으로 몰아 보거나 한 사람이나 집단을 특정하기 보다는 구조적인 요인과 복합적인 여러 원인을 다각도로 돌아보면서 깊게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단순한 결론에 안주하기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고, 때로는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보다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더 이성적이고, 현명한 방향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