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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과잉시대에서 도구적 이성비판

by 이주낙

길거리를 자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닌다. SNS에서 유행하는 특정 브랜드, 특정 스타일이 빠르게 확산되며, 결국 모두가 똑같은 클론룩을 입는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한때 ‘핫플’로 불리던 카페나 음식점이 유행하면, 전국 어디서나 같은 스타일의 가게가 등장하고, 같은 메뉴가 반복된다. 심지어 주거형태조차 획일화되어 있다. 전국의 신도시는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 단지로 채워지고, 동네 상권마저 대형 프랜차이즈가 장악하면서 도시는 점점 더 개성이 사라진다. 어디를 가도 똑같은 건물, 똑같은 카페,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만 보인다. 갈 수록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정보의 양과 접근성은 늘어나는데 왜 사회와 사람들의 취향과 시야는 갈수록 협소해질까? 이는 항상 최적화된 결정만 하려는 과도한 합리성 추구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뉴스와 데이터가 쏟아지며,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자동으로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사고는 더욱 수동적으로 변하고, 자발적이고, 개별적인 성찰은 사라진다. 정보는 많지만, 그 정보가 개인의 개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성과 효율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을 양산한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이성이 본래 인간과 세계의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효율성과 합리성만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 현대 사회에서 이성은 개성을 발견하고 자유를 탐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최적의 선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옷을 살 때도, 음식을 고를 때도, 집을 구할 때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개별적인 취향을 탐색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최선의 선택’을 따라가며, 결국 모든 것이 비슷해진다. 그 결과 한 방향으로 필요 이상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그 경쟁에서 도퇴된 사람들이나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족하거나 틀리다고 치부해버리게 된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은 사라진다.


또 이러한 도구적 이성이 가장 위험한 영역중 하나는 정치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 파시즘을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를 활용한 정치적 선동이 어떻게 대중을 조종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가장 효율적으로 강렬한 유희와 자극을 얻으면서 자신들의 기존 신념을 정당화하고 싶은 경향을 보인다. 정치권은 이를 이용해 여론을 수치화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하며, 때로는 선동적인 메시지를 통해 특정 이념을 강요한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정황을 교묘하게 섞어 판단을 유예하는것을 허용하지않고 성급한 판단을 강요하한다. 심지어 가짜뉴스를 계속해서 만들고 재생산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파시즘을 강화시킨다.

그 결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점점 극단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파시즘적 정치가 부활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분노를 자극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복잡한 현실을 '좌'와 '우' 단순한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고, 대중은 스스로 사고하기보다 제공된 ‘최적의 판단’을 따르도록 유도된다. 이는 현대의 기술문명과 결합하면서 더욱 강력한 사회적 조작을 가능하게 한다. 알고리즘이 강화하는 확증편향과 에코챔버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접하지 못하고, 결국 집단주의와 이념적 획일화가 강화된다.


호르크하이머가 강조했듯, 이성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이성은 단순한 효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효율적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주어진 정보 속에서 남들이 강요하는 답이 아니라 자기만의 해답을 찾는 연습을 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이성자체를 폭넓게 추구해야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개성을 넘어서 개인의 상실된 다양한 가치를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과 합리성만이 아니라, 예술적 감각과 직관, 우정과 연대, 전통과 역사, 그리고 때로는 무모한 비합리성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가능성을 상기해야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그 어떤 알고리즘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정보과잉 시대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면,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단순한 ‘최적화’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만의 가치와 신념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개성의 회복만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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