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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소비하는 요즘

샤덴프로이데

by 이주낙

요즘 ott 상위권에 있는 예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관찰 예능이 많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사실감과 몰입감으로 차별화된 자극을 제공한다. 매운 배달음식과 함께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극단적 사연에 대해 분노하다보면 나도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리고, 나와 내 주변사람들은 저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이 감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인의 불행을 즐겨버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씁쓸하고 찝찝한 피로감이 감돈다.


최근 몇 년 사이, 특정 유형의 예능이 부각되면서 그 영향력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바로 샤덴프로이데, 즉 타인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우월감과 쾌감을 유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특히, 결혼과 육아를 다루는 솔루션 예능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겉으로는 솔루션을 위한 기획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반인의 결혼 생활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다툼, 갈등, 육아의 고충을 강조한다. 출연진의 피로한 표정, 감정이 고조된 갈등 장면,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송출되면서 시청자들은 결혼과 출산이 마치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 처럼 느껴지도록 유도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이미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더욱 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수 있지만, 이를 극적으로 부각하고 자극적인 편집을 통해 '갈등'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문제다. 결혼 생활을 다루는 일부 예능에서는 부부 간의 언쟁, 오해, 금전적, 정신적 문제 등이 과장되게 연출된다. 육아 예능도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면서 부모가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강조하는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이 후 결말부엔 해결이 된듯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결국 해결되지 않는 비하인드와 와전된 소문으로 인해 마치 결혼과 육아가 지속적인 고통의 연속인것 처럼 보이게 만든다.


부정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능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마라탕같은 자극적인 공감이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혼자들은 나는 저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위안을 얻는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이 단순한 이해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극심함 샤덴프로이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속담처럼 어쩌면 샤덴프로이데가 경쟁사회에서 보편적인 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으니 다행이다 혹은 저런 인생은 최악이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공감을 넘어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예능을 소비하는 시청자는 출연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중독되는 행태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경쟁이 심화 될 수록 방송사들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목표로 자극적인 컨텐츠를 양산한다. 하지만 이들이 시청률을 위해 고통소비를 유도하면서 편향된 컨텐츠를 전달하는 것을 방관해선 안된다. 이는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힙합가사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사회적으로 매우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결혼과 육아를 긍정적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오는 기끔과 성장도 보여줘야하며, 육아의 힘든 점뿐만 아니라 보람과 행복한 순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조명해야 한다. 물론 왜곡되거나 과장된 컨텐츠를 필터링 할 수 있는 시청자의 역량도 중요하겠지만, 사회적이든 제도적이든 고통과 불행을 이용하는 예능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옆 친구가 시험을 망쳐야 내 등수가 올라가는 교육시스템을 12년 학습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샤덴프로이데는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기제라고도 생각이 든다.)


앞으로 XX숙려 X쪽이 XX지옥 XX엄빠 같은거 안본다. 퉤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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