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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Apr 19. 2016

나도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나 보다.

멋있게 나이 먹기가 어렵다.

월요일 아침에 시스템 점검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이것저것 바빠 죽겠는데 재무부 신입직원 하나가 전화를 했다. 어떤 손님의 Invoice 하나가 Pay 가 안되고 있는데 혹시 EDI (전자 문서 교환) 시스템 상으로 Invoice 가 잘 나갔는지 확인해 달라는 전화였다. 그 당시에는 정신이 없고 바빠서 확인해 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쁜 것도 바쁜 것이었지만 시스템에 들어가면 다 확인할 수 있는걸 띨띨하게 나한테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달라고 하는 것도 맘에 안 들었다. 누가 교육을 시켰는지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을 계속했다. 


두 시간쯤 있다가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는데 그 신입 직원이었다. 같은 내용이었는데 우리 부서 Director를 같이 C.C 해서 이메일을 보냈다. 빨리 처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왜 두 번 일 시키냐는 듯한.. (사실은 읽는 내가 삐뚤어졌었을 수도.. ) 처음에는 얘가 돌았나 싶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짜증이 확 나서 그 신입직원, 그 친구 위 Assistant manager, Manager 까지 C.C 해서 (Director 까지 하려다 참았다..) 이 사항은 회사 포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Instruction 공부해서 직접 확인하라고 nasty 한 이메일을 써줬다.  


얼마 후 그 친구 매니저 한테서 신입이라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몰라서 이메일을 잘못 보낸 것 같다며 미안하다며 대신 이메일이 왔다. 이미 확인은 다 했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바쁜 오전 업무시간이 지나고 좀 오후쯤 돼서 시간이 남으니 오전의 그 일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문득 내 모습이 사뭇 처량해 젔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왔으면 기껏해야 스물네다섯 일 텐데 그 어린애한테  참 쪼잔했구나 싶었다. 처음에 전화 왔을 때 제대로 된 instruction을 가르쳐 주었으면 거기서 끝이 났을 일을.. 급 후회가 밀려왔다. 아마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욕이 넘첬을 것이다. 위에서 확인하라고 지시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고 나를 재촉했을 것이다. 처음이라 어리바리한 거야 당연한 것이고.. (아마 그 당시에 난 더 했을 것이다) 


만약 신입 사원 말고 Manager급이 와서 같은 질문을 했으면 아마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확인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 신입사원에게 나도 모르게 '네가 나한테 이런 거 재촉할 짬밥이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니했었다. 부끄럽지만..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는 건 고집과 아집뿐이다. 늘 생각하고 환기시키지 않으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나도 모르게 퇴근시간만 기다리고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룬다. 그리고 오늘 안 하면 문제가 생길 것들만 해결해 나간다. 짬밥이란 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 그렇게 설렁설렁 해도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아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한도 안에서 최대한 설렁거림을 극대화해서 살아가고 있다. 


업무에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설렁되는 모습을 보는 신입직원들에게 나는 우리 부서를 장악한 영악한 꼰대였을 것이다. 


IT 업무 특성상 자격증이나 관련 서적에 대한 공부는 꾸준하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근데 문제는 IT 관련 서적 이 아닌 책을 읽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정서는 말라가고 회사일 말고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해졌다. 회사일 말고 동료의 취미나 관심사, 그들의 미래 같은 것에 대한 소통을 해본지도 오래되었다. 워낙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문화이기도 하고 신입사원이랑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니 같이할 관심사도 없으므로 당연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난 그저 회사일 (그것도 시키는 일만)에 최적화된 하나의 시스템일 뿐이고 그들에게 어떤 맨토 또는 동반자의 역할도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처음 들어왔을 때 믿고 일할 상사가 없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아마 지금 신입 직원들은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워킹데드에서 좀비에 물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등장인물과 겹쳐서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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