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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20. 2019

I Envy You

그녀의 분위기

요즘 자주 생각나는 작가 지망생 지인이 있다.



6년 전, 백수일 때라 꽤 일찍 가서 시나리오 수업 준비를 하곤 했는데 나처럼 수업시간보다 2-30분 일찍 와서 글을 쓰고 있던 분이 있었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여자분이었다.



분위기 미녀. 그분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느낌이다. 가까이 가긴 힘들지만 가까이 가고 싶은 느낌이 드는 분이었다.



어느 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어떻게 시나리오를 쓰게 됐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했는데 먹고 사느라 다른 일을 하다가, 서른이 코앞이라 지금 도전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까 봐 글을 제대로 완성하고 싶어서 몇 푼 안 되는 돈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다고 내 소개를 했다.


그분이 말했다.



-대단하네요.



종종 저런 말을 들었지만 나의 선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발밑은 시궁창이라도 두 눈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걸 꿈꿀 수 있는 삶도 괜찮은 선택지라고 남몰래 정신 승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분은 대학 졸업하고 회사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계속해서 살림과 육아를 하고 있었다. 애들도 이제 좀 컸고,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과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셨는데, 최근에 써보면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 소재가 있어서 가족들에게 의견을 묻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에 도전해보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졸업한 학교를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지만 경쟁률이 높거나 명문대는 아니다. 나는 공부를 못 했고 그 와중에 수능까지 망쳐서 명문대도 아닌 우리 학교에 예비 합격되었다가 입학식 며칠 전에 겨우 추가합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학교를 듣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명문인 대학교의 영문학과였다.



-아까우셨겠다.



그분은 아니라고 했다. 그때 뭔가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세상 분위기 자체가 일보다 여자 나이 26-7살쯤에 결혼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였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한 결혼이지만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적절한 결혼 시기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거기다 아버지는 내가 너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며 곧 돌아가실 것처럼 말하셔서 덜컥 겁이 나서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엄살 같다고, 속은 거 같다고, 지금도 너무 정정하게 잘 계신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그런 결혼 압박은 없냐고 했다. 독립 이후 내 한 몸 챙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압박이 너무 커서 주변의 결혼 압박은 먼지만큼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혼자 사니까 챙겨야 할 누군가가 없어서 좋겠다고 부럽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좀 부러웠다.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러움이다. 좋아 보이는 것이고 나한테 없는 것인데 딱히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잘 안 드는 무엇이 그녀에게 있었다.



간절히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간절히 노력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것.



그녀가 가진 분위기. 자연스럽게 배어야 하는 것이라서 갖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그건 개인이 혼자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둘러싼 모든 환경이, 관계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이 걱정을 끼치지 않고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고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부드럽고 우아하고,



평온한 분위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안정적인 느낌이 가득 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온전하고 다정한 자기편과 단단한 자기 세상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



나는 결혼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좋은 결혼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몇 살이 됐건 그분처럼 결코 눈 딱 감고 분위기에 휩쓸려 결혼을 할 수 없는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항간에는 정신줄 잠깐 놓치면 이미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치르고 어느새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아침 하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는 말이 돌던데 나는 아무리 누굴 좋아해도, 어떤 연애에서는,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정신줄을 놓치는 게 쉽지가 않다. 거의 정신줄을 놓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연애 문제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가진 분위기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후 그녀의 나이가 된다 해도.



그분은 나에게, 결혼하라는 어른들 의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뭔가를 도전할 수 있는, 인간관계나 연애 문제에 단호한 내 성격이 부럽다고 했지만, 그녀가 내 나이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대하는 결이 달랐다.






각자의 성격과 환경, 그리고 선택이 서로를 다르게 만들고, 그래서 각자 다른 인생을 만든다. 아무리 좋아보이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한 선택을 내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똑같은 선택을 했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주변 구성물이 다르니까.



내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그녀의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아니었지만 좋아 보였다. 아주 정확하게 부러움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부러움에 가까운 감정이었겠지. 그녀의 분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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